사진이 있는 이야기/아름다운 우리문화 산책(김영조)

얼음 먹는 벼슬아치, 얼음 뜨던 백성 몰라 – 김창협, 「착빙행」

튼씩이 2022. 1. 17. 12:57

얼음 먹는 벼슬아치, 얼음 뜨던 백성 몰라 – 김창협, 「착빙행」

 

 

고대광실 오뉴월 푹푹 찌는 여름날에                  高堂六月盛炎蒸

여인의 섬섬옥수 맑은 얼음 내어오네                  美人素手傳淸氷

칼로 그 얼음 깨 자리에 두루 돌리니                   鸞刀擊碎四座徧

멀건 대낮에 하얀 안개가 피어나네                     空裏白日流素霰

왁자지껄 떠드는 이들 더위를 모르니                  滿堂歡樂不知暑

얼음 뜨는 그 고생을 그 누가 알아주리                誰言鑿氷此勞苦

그대는 못 보았나?                                               君不見

길가에 더위 먹고 죽어 뒹구는 백성들이              道傍暍死民

지난겨울 강 위에서 얼음 뜨던 자들이란 걸          多是江中鑿氷人

 

조선 후기 문신 김창협(金昌協)착빙행(鑿氷行, 얼음 뜨러 가는 길)입니다. 냉장고가 없던 조선시대에는 얼음으로 음식이 상하는 것을 막았지요. 한겨울 장빙군(藏氷軍)이 한강에서 얼음을 떠 동빙고와 서빙고로 날랐는데, 이들은 짧은 옷에 맨발인 자들도 있었다고 전합니다. 그렇게 저장된 얼음은 한여름 궁궐의 임금과 높은 벼슬아치들 차지였지요. 그들은 얼음을 입에 넣고 찌는듯한 여름에도 더위를 모른 채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때 길가에는 굶주리고 병들고 더위를 먹어서 죽은 백성들의 주검이 나뒹굽니다. 죽은 백성이 지난 겨울 맨발로 얼음을 뜨던 백성이었음을 임금과 벼슬아치들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고 시인은 고발하고 있지요.

 

김창협은 숙종 때 대사성 등을 지냈으나, 기사환국(己巳換局) 때 아버지가 사약을 받고 죽은 뒤 관직을 사양하고 숨어 살았습니다. 그는 문학과 유학의 대가로 이름이 높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