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를 가린 뜬구름 쓸어갈 싹쓸바람은? - 권근, 「중추」
가을바람과 옥 같은 이슬이 은하를 씻은 듯 秋風玉露洗銀河
달빛은 예부터 이런 밤이 좋았다 月色由來此夜多
슬프게도 뜬구름이 해를 가려버리니 惆悵浮雲能蔽日
술잔을 멈추고 한 번 묻노니, 어쩌자는 것인가 停杯一問欲如何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자 학자인 양촌(陽村) 권근(權近)의 한시 「중추(仲秋)」입니다. 권근은 조선 개국 후 ‘사병 폐지’를 주장하여 왕권 확립에 큰 공을 세웠습니다. 대사성, 세자좌빈객 등을 역임하고 길창부원군에 봉해졌지요. 문장에 뛰어났고, 경학에 밝았으며, 저서에는 『입학도설(入學圖說)』, 『양촌집(陽村集)』, 『사서오경구결(四書五經口訣)』, 『동현사략(東賢事略)』 따위가 있습니다.
시에서는 슬프게도 뜬구름이 해를 가려버립니다. 해는 임금을 가리키고 뜬구름은 임금 곁에서 임금의 눈을 흐리는 간신배를 말하지요. 권근은 술을 마시다 멈추고 묻습니다. 임금의 눈을 흐려서 나라가 망하면 어쩔 거냐고 말입니다. 만일 싹쓸바람이 있다면 뜬구름을 확 쓸어가겠지요. ‘싹쓸바람’은 풍속이 초속 32.7m 이상이고 육지의 모든 것을 쓸어갈 만큼 피해가 아주 격심한 바람을 뜻하는 토박이말입니다.
'사진이 있는 이야기 > 아름다운 우리문화 산책(김영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려시대 기생 동인홍의 절개 – 동인홍, 「자서」 (0) | 2022.01.15 |
---|---|
고운 향기 거두어 이끼 속에 감추다 – 정온, 「절매식호중」 (0) | 2022.01.14 |
누에 치는 아낙은 비단옷 입지 못하니 – 이산해, 「잠부」 (0) | 2022.01.12 |
띠풀 집에 밝은 달 맑은 바람이 벗이어라 – 길재, 「한거」 (0) | 2022.01.11 |
마음을 비우고 솔바람 소리 들을까? - 홍세태, 「우음」 (0) | 2022.0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