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이 칭송한 ‘백세의 스승’ - 김시습, 「산거집구」
천산과 만산을 돌아다니고 踏破千山與滿山
골짝 문을 굳게 닫고 흰구름으로 잠갔다 洞門牢鎖白雲關
많은 소나무로 고개 위에 한 칸 집 지으니 萬松嶺上間屋
승려와 흰 구름 서로 보며 한가하다 僧與白雲相對閑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이 쓴 한시(漢詩) 「산거집구(山居集句)」입니다. ‘집구(集句)’란 이 사람 저 사람의 시에서 한 구절씩 따와 새로운 시를 짓는 것으로, 운자(韻字)도 맞아야 하기 때문에 완전한 창작 이상의 예술혼이 담긴 작품이지요. 이 작품에는 떠돌이 삶을 산 자신의 모습과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된 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골짝 문을 굳게 닫고 흰구름으로 잠갔다”라든가 “승려와 흰 구름 서로 보며 한가하다”라는 시구에서는 김시습이 뛰어난 시심을 지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의 작가인 김시습은 세조에게 밀려난 단종에 대한 신의를 끝까지 지키며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자연에 은거한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이지요. 또 이긍익(李肯翊)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 따르면 그는 단종 복위를 꾀하다 죽임을 당한 사육신(死六臣)의 주검을 거두었습니다. 서슬이 퍼런 세조의 위세에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김시습이 주검을 하나하나 바랑에 담아 한강 건너 노량진에 묻었다고 합니다. 그는 이렇게 배운 것을 철저히 실천에 옮기는 지식인이었습니다. 그 결과 훗날 율곡 이이로부터 ‘백세의 스승’이라는 칭송을 들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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