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아름다운 우리문화 산책(김영조)

여종 신분으로 한시 166수를 남기다 – 설죽, 「낭군거후」

튼씩이 2022. 1. 20. 08:04

여종 신분으로 한시 166수를 남기다 – 설죽, 「낭군거후」

 

 

낭군님 떠난 뒤에 소식마저 끊겼는데                     郎君去後音塵絶

봄날 청루에서 홀로 잠들어요                               獨宿靑樓芳草節

촛불 꺼진 창가에서 끝없이 눈물을 흘리는 밤          燭盡紗窓無限啼

두견새 울고 배꽃도 떨어지네요                            杜鵑叫落梨花月

 

 

조선시대 천한 신분의 여종 설죽(雪竹)이 남긴 낭군거후(郎君去後)라는 한시입니다. 선비들이 설죽의 실력을 알아보려고 만일 자신의 낭군이 죽었다고 치고 시를 한 수 지어 보라는 말에 지은 시라고 전해집니다. 한다하던 선비들이 모두 설죽의 시를 듣고 감탄했다는 후일담이 있을 만큼, 설죽은 명시를 지어 남성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지요. 이렇게 설죽이 지은 시는 조신 중기의 시인 권상원(權尙遠) 시집 백운자시고(白雲子詩稿)끝 부분에 모두 166수가 필사되어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조선시대 여류시인이 지은 시를 모두 합하면 약 2,000수인데, 이 가운데 10% 가까이를 설죽이 지은 것입니다. 설죽은 그만큼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뛰어난 시를 지은 인물로 꼽힙니다.

 

설죽은 원래 조선 중기의 학자 권래(權萊)의 여종이었는데, 어려서부터 벽을 사이에 둔 채 시문을 공부하는 소리를 듣고 그 글의 뜻을 풀었습니다. 마침내 글에 능하고 시를 잘 짓게 되자 당시 사람들은 설죽을 중국 후한의 대표적 유학자였던 강성(康成) 정현(鄭玄)의 비()에 견주었습니다. 우리는 조선시대 여류시인으로 흔히 허난설헌과 황진이, 신사임당 등을 꼽지만 이들 말고도 기생 매창과 여종 설죽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