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여종 신분으로 한시 166 수를 남긴 “설죽”

튼씩이 2015. 11. 19. 20:27

날마다 쓰는 한국문화 편지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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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4348(2015). 11. 16.



郎君去後音塵絶 낭군님 떠난 뒤에 소식마저 끊겼는데
獨宿靑樓芳草節 봄날 청루에서 홀로 잠들어요
燭盡紗窓無限啼 촛불 꺼진 창가에서 끝없이 눈물을 흘리는 밤
杜鵑叫落梨花月 두견새 울고 배꽃도 떨어지네요

위는 조선시대 천한 신분의 여종 설죽(雪竹)이 남긴〈낭군거후(郎君去後)〉라는 한시입니다. 이 시는 한다하는 조선의 선비들이 설죽의 실력을 알아보려고 '만일 자신의 낭군이 죽었다고 치고 시를 한수 지어 보라'는 말에 지은 시라고 전해집니다. 한다하던 선비들은 설죽의 시를 듣고 모두 감탄했다는 후일담이 있을 만큼 천한 신분의 설죽은 명시를 지어 남성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지요. 이렇게 설죽이 지은 시는 166수로 조선시대 여류 시인들이 지은 시를 모두 합한 2000여수 가운데 10%에 가까이에 이를 만큼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뛰어난 시를 지은 인물로 꼽힙니다.

설죽은 원래 조선 중기의 학자 권래(權來)의 여종이었는데 송강 정철의 애제자인 성로(成輅)와 사랑에 빠져 주고받은 연시(戀詩)가 20수나 있습니다. 설죽 시는 조선 중기의 시인 권상원(權商遠) 시집 《백운자시고(白雲子詩稿)》 끝 부분에 모두 166수가 필사되어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종 신분이었지만 어려서부터 벽을 사이에 둔 체 시문을 공부하는 소리를 듣고 그 글의 뜻을 풀었음은 물론 마침내 글에 능하고 시를 잘 지어 당시 사람들이 중국 후한의 학자였던 강성(康成) 정현(鄭玄)의 비(婢)에 견주었습니다. 우리는 조선시대 여류시인으로 흔히 허난설헌과 황진이, 신사임당 등을 꼽지만 이들 말고도 기생 매창과 여종 설죽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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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박이말 시조 238 >

꼬까잎(丹楓)



첫겨울 내려올제 메들은 붉게타니

꼬까메야 잘물들었나 보고픈 뒷쪽겨레

깊어갈 맑은가을을 언제함께 볼까나

.

* 꼬까메 : 북녘의 단풍산 곧 묘향산
* 메 : 산

.

재일본 한국문인협회 회장 김리박

소장 김영조 ☎ (02) 733-5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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