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새색시 가마에 드리우는 붉은 장식 ‘가마발’

튼씩이 2015. 11. 21. 14:33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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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4348(2015). 11. 20.



우리나라에 가마가 언제부터 생겨난 것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신라 기와에 바퀴 달린 연 비슷한 것이 새겨진 것으로 보아 이미 삼국시대 이전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고구려 안악3호분(安岳三號墳) 전실 서쪽벽에 있는 <주인도(主人圖)>와 <부인도(婦人圖)>에는 호화로운 가마에 앉아 있는 주인과 부인의 모습이 각각 그려져 있지요. ≪고려도경≫에도 채여(采輿)·견여(肩輿) 따위를 비롯한 고려시대의 가마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임금이 타던 가마 “연”, 공주나 옹주가 타던 가마로 연과 비슷한 “덩”, 앞뒤에 말을 한 마리씩 두어 끌고 가게 한 것으로 임금이 타는 가마 “가교”, 앞뒤에 각각 두 사람씩 모두 네 사람이 메는 가마로 혼인 때 신랑ㆍ신부가 주로 이용하는 “사인교”, 외바퀴 수레인 “초헌“, 먹거리나 흙 또는 곡물을 실어 나르던 ”갸자“ 따위가 있었고, 그밖에 남여, 삿갓가마(草轎), 용정자(龍亭子), 채여 등도 있었지요.

그리고 이 가마들에는 문에 드리우돈 가마발이 있었습니다. 가마발은 혼례나 장례 따위 의식용 가마에 사용하는 꾸밈의 하나로 가마의 앞면과 옆면의 문에 드리우는 가리개용 발입니다. 가마발은 시집가는 새색시의 가마에 드리워 신부의 모습을 가리고 가마를 꾸미는데 쓰였으며 이때는 붉은 칠(朱漆)을 하고, 가마발에 다양한 모양의 자수품을 장식으로 달기도 했습니다. 불교의식에서는 부처님을 모신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가마의 일종인 연(輦)에도 가마발에 다는 것과 비슷한 자수품이나 기타 장식품을 달았으며 장례용 가마발은 검은색과 흰색으로 장식합니다.

옛 얼레빗 (2011-11-21)


2202. 세종의 '정간보'와 700년 걸려 완성된 서양 오선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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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 가운데 음의 길이와 높이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을 유량악보라고 합니다. 그에는 서양의 오선기보와 세종이 창안한 동양 최초의 정간보(井間譜)가 있습니다. 고려시대부터 써온 것으로 보이는 율자보(律字譜)ㆍ공척보(工尺譜) 같은 것들은 음 길이를 나타내지 못하는 흠이 있어 이런 흠을 없애려고 절대음감의 소유자인 세종이 만든 것이 정간보였지요.

세종 때 만든 정간보는 1행 32 간(間)을 ‘우물 정(井)’ 자 모양으로 칸을 질러놓고, 한 칸을 1박으로 쳐서 음의 길이를 나타낸 것입니다. 세종은 “아악은 본래 우리 음악이 아니고 실은 중국 음악이다. 우리 조상이 살아서는 향악을 익숙하게 듣다가 죽어서는 제사 때 아악을 들으니 잘못된 일이다. 따라서 제사 때에도 향악을 연주해야만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자주적인 정신을 가졌기에 세종은 정간보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 정간보를 이용한 악보에는 <세종실록악보>ㆍ<금합자보(琴合字譜)>ㆍ<양금신보(梁琴新譜)>ㆍ<대악후보(大樂後譜)>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서양 음악의 오선기보는 9세기 말부터 시작하여 17세기 초까지 700여 년이라는 긴 시간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것에 견주어 세종이 만든 정간보는 그보다 훨씬 짧은 시간에 만들어진 유량악보인 것입니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소장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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