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책을 읽자 454

내가 백년식당에서 배운 것들 - 박찬일

해장국이란 술 마신 후 먹는 국이라는 뜻으로 회자되지만, 원래는 일꾼들의 노동 음식이었다. 그 후 해정갱(解酲羹)이리고 불리다가 지금의 해장국이 되었다. 해정이란 문자 그대로 취기를 푼다는 뜻이고, 갱은 국이나 찌개를 뜻한다. - 149쪽 - 토렴에는 또 다른 맛의 비결이 숨어 있다. 뜨거운 밥을 그대로 말면, 전분이 녹아 국물이 탁해져서 맛을 버리게 된다. 오히려 밥이 적당히 식어서 단단해진 다음 토렴하면 온도도 맞고, 밥 알갱이의 씹히는 맛도 살아 있는 최상의 상태가 된다. - 151쪽 - 한 그릇 얼른 비우고 일하기에 가장 좋은 음식이 바로 '탕'이었다. 반찬 가짓수가 거의 없어서 빨리 먹을 수 있었다. 이런 내력은 지금도 이어져 한 상 가득 반찬을 차리는 습속에서도 탕 요리만큼은 깍두기나 김치 한..

알로하, 나의 엄마들 - 이금이

출판사 리뷰 여성은 혼자 장에 가는 것조차 어려웠던 시절, 태평양을 건너 하와이로 간 여성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되었다. 이금이 작가는 한인 미주 이민 100년사를 다룬 책을 보던 중 앳돼 보이는 얼굴에 흰 무명 치마저고리를 입은 세 명의 여성을 찍은 사진을 마주한다. 그 속에는 “이미 와 있는 오래된 미래”처럼 낯설면서도 익숙한, 가슴을 뜨겁게 데우는 여성의 숨죽인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승리자 중심으로, 남성의 시각으로 쓰인 주류 역사에서 비켜나 있던 하와이 이민 1세대 여성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뜻깊은 발견이었다. 교과서에도 공들여 소개되지 않은 역사의 한 페이지였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의 주인공은 일제 강점기 경상도 김해의 작은 마을..

한여름의 방정식 - 히가시노 게이고

출판사 리뷰 여름 방학을 맞아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에서 여관을 운영하는 고모네로 놀러 가던 초등학생 교헤이는 기차 안에서 회의 참석차 같은 곳으로 가던 데이토 대학 물리학부 유가와 교수와 우연히 얘기를 나누게 된다. 교헤이는 유가와에게 고모네 여관을 소개하고, 유가와는 그곳에서 며칠을 묵기로 한다. 두 사람이 여관에 온 다음 날, 또 한 사람의 투숙객인 쓰카하라 마사쓰구가 항구 근처 바위 위에서 변사체로 발견된다. 확인 결과 그는 전 경시청 형사로 밝혀지고, 경찰은 처음에는 단순 추락사로 단정했으나 부검 결과 일산화탄소 중독사임이 드러난다. 쓰카하라가 아무런 연고가 없는 마을에 온 이유와 사망 과정이 미궁에 빠진 가운데 유가와는 16년 전 일어난 한 살인 사건의 진상과 맞닥뜨리고, 여관 가족이 숨겨야만 ..

가불 선진국 - 조국

출판사 리뷰 대한민국은 짧은 기간 눈부신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이룩하며 이제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다. 기존 선진국들이 몇 세기에 걸쳐 단계적으로 국가 역량이 성장한 것과 비교해보면 한국의 가파른 성장은 괄목할 만하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 이면에는 개선해야 할 수많은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이제 한국의 민주주의는 성숙한 단계로 진입했다. 하지만 사회·경제 분야에서는 선진국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시대착오적이고 불합리한 사회 제도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만성적이고 구조적인 불평등과 차별 문제, 무한 경쟁에 따른 적자생존 등이 그것이다. 그동안 한국은 선진국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문제들을 도외시해왔으며, 소외되는 약자층의 희생을 딛고 서 왔다. 법학자이자 연구자로서,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이자 문재인 정..

조선궁중잔혹사 - 김이리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9년간 지내면서 강한 조선을 만들기 위해 노심초사하며 노력했던 소현세자와 세자비 강빈, 그들의 노력이 옹졸한 아버지(인조)와 소용 조씨 때문에 물거품이 되어버린 슬픈 역사에 대한 이야기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고 하지만, 가정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인조가, 선조가 아니면 다른 한 명의 왕이라도 한 번만 더 생각해보고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면 지금의 우리나라는 어떤 위치에 있을까? 애통할 따름이다.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 - 박영서

이 책은 덕후의 미덕으로 가득하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뻔한 해설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고, 역사책에서 한두 줄로 설명되는 백성의 삶을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짐작하게 해주며, 한국사 교과서 주요 등장인물인 조선 선비들의 숨겨진 면을 저격한다는 점 등이 특히 그렇다. 잘난 아버지 뒷바라지에 멘붕을 면하지 못하는 아들에게 ‘야망이 없다’ ‘미래 계획이 없다’라고 돌직구를 날리는 퇴계 이황, 기러기부부로 살지만 바람 같은 건 모른다며 은근슬쩍 아내를 도발하는 남편에게 ‘솔직히 나이 60에 홀아비 노릇 하면 당신 건강에 득이 되는 거지 나한텐 1도 이로울 게 없네요’라고 당차게 응수하는 아내, 경로사상 따위 안드로메다로 날려 보냈는지 권신 심환지에게 ‘이런 생각 없는 늙은이를 봤나’라고 핵폭탄을 날린 정조,..

용의자 X의 헌신 - 히가시노 게이고

도쿄 에도가와 인근 한 연립 주택에서 중년 남자가 모녀에 의해 살해된다. 숨진 남자는 여자의 이혼한 두 번째 남편 도가시. 돈을 갈취하기 위해 찾아와 폭력을 휘두르는 그를 모녀가 우발적으로 목 졸라 살해한 것. 여자의 이름은 하나오카 야스코. 한때 술집 호스티스였으나 지금은 도시락 가게에서 일하면서, 첫 남편과의 사이에 낳은 딸 미사토를 키우고 있다. 우연히 사건을 눈치채게 된 옆집 사는 고등학교 수학교사 이시가미가 그녀를 돕겠다고 나선다. 궁지에 빠진 야스코는 그의 제의를 받아들이고, 이전부터 마음속으로 야스코를 깊이 사모해 왔던 이시가미는 완전범죄 만들기에 나서게 된다. 대학 시절 백 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는 소리를 듣던 그는 빈틈없는 알리바이를 만들고, 경찰 심문에 대응하는 요령까지 모녀..

하쿠바산장 살인사건 - 히가시노 게이고

오빠가 죽었다. 죽은 오빠가 발견된 곳은 여동생 나오코도 가본 적 없는 하쿠바의 ‘머더구스 펜션’이었다. 경찰은 사건을 ‘우울증에 끝에 선택한 자살’이라고 결론 냈지만 나오코는 그 죽음을 단순히 우울증 때문이라고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오빠는 죽기 전, 긍정적인 내용이 가득한 엽서를 나오코 앞으로 보내왔었다. 심지어 ‘마리아 님은 언제 집에 돌아왔지?’라는 수수께끼의 메시지도 함께였다. 자살을 앞둔 사람이 굳이 그런 기묘한 엽서를 남겨야만 했던 이유가 있을까? 그 메시지에 오빠가 죽은 이유가 담겨 있을 거라 생각한 나오코는 오빠가 죽었던 시기에 맞춰 친구와 함께 문제의 산장을 찾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이 산장, 뭔가 이상하다. 끊어져서 사용할 수 없는 다리, 여덟 개의 방마다 새겨진 영국동요「머더구스」의..

과일로 읽는 세계사 - 윤덕노

25가지 과일에 얽힌 이동 경로, 역사적인 사건 등을 정리한 책으로, 과거에는 정말 어렵게 얻을 수 있었던 과일들을 요즘은 너무나 쉽게 접하게 되어 과일을 편하게 먹을 수 있다는 고마움 보다는 이런 현실이 당연하다고 느끼며 사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수박이 미국에서는 인종차별의 상징물로 흑인을 멸시하고 비하하는 도구, 인종차별을 상징하는 과일이었으며, 파인애플은 서양 귀족들이 렌트해서 파티 장식용으로 사용한 귀한 과일이었고, 뉴질랜드가 원산지로 알고 있는 키위가 동양의 과일이었다는 사실, 바나나의 원사지가 동남아였다는 사실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알고 있던 것들이 잘못 알려진 내용이라고 한다. 참외는 우리에게 참 특별한 과일이다. 이를테면 참외 넝쿨은 끊임없이 뻗어나가며 계속해 열매를 맺기 때문에 ..

회랑정 살인사건 - 히가시노 게이고

눈을 떠보니 나, 기리유 에리코가 가장 사랑하는 지로는 세상에서 사라져 있었다. 지로는 연애 한 번 해본 적 없던 나를 유일하게 사랑해 주었던 남자였다. 경찰은 그가 자동차로 사람을 치어 죽였다는 사실에 비관하여, 회랑정에서 나와 동반자살하려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든 게 거짓이었다. 그는 동반자살 같은 건 하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난 잘 알고 있다. 이치가하라 집안사람들이 회랑정이라는 료칸에 모인 날 밤, 유산에 눈이 먼 그들 때문에 지로는 자살당했다. 사랑하는 지로를 앗아간 범인에게 복수하기 위해 나는 노파로 분장하고 회랑정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재벌 이치가하라가 남긴 막대한 유산의 행방이 공개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밤, 나는 범인의 방에 숨어 들어가 목을 힘껏 졸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