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자/한글문화연대 1001

‘참석하다’와 ‘참가하다’

‘참석하다’와 ‘참가하다’는 거의 구별 없이 쓰이고 있지만 뜻 차이가 있기 때문에 쓰임이 다를 때가 있다. 가령, “이번 모임에 모두 참석해 주세요.”는 “이번 모임에 모두 참가해 주세요.”로 바꾸어 쓸 수 있지만, “혼인식에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 주세요.”를 “혼인식에 참가하여 자리를 빛내 주세요.”로 바꾸어 쓰면 매우 어색한 문장이 된다. ‘참석’은 마련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의미가 강한 반면, ‘참가’는 단순히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에 직접 관계를 가지고 행동하는 경우에 사용되기 때문이다. 혼인식에 오는 하객들은 ‘참가’하는 것이 아니라, ‘참석’하는 것이다. 반면에 “서초동 촛불 시위에 참석했다.”보다는 “서초동 촛불 시위에 참가했다.”라고 하는 것이 좀 더 알맞은 표현이다. 어떤..

솔솔 부는 솔바람

우리말이 만들어진 모습은 무척 슬기롭고 효율적이다. ‘길다’는 ‘길’에 ‘-다’가 붙어서 만들어진 말이다. ‘길’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길고도 멀어서 끝나는 데를 알 수 없는 것’이라는 속성이 느껴진다. 그래서 이 ‘길’에 ‘-다’를 붙여 ‘길다’라는 동사를 만들었다. 같은 원리로 ‘빗’의 주된 용도를 나타내는 동사를, 물건의 이름인 ‘빗’에 ‘-다’를 붙여서 ‘빗다’라고 만들었다. ‘신’에 ‘-다’를 붙여 ‘신다’가 됐고, ‘품다’는 ‘품’에 ‘-다’를 붙인 말이다. 어떤 사물의 속성을 그대로 밝혀서 동사로 만든 것들이 우리가 가장 많이 쓰고 있는 기본 어휘들이다. ‘솔다’는 말이 있는데, 이때의 ‘솔’은 가늘고 좁다는 뜻의 말이다. 바느질할 때, 옷의 겉과 속을 뚫고 가느다랗게 이어진 봉합선을 ‘솔..

황금빛 들판

“들판에 누렇게 익은 곡식”, “가을걷이를 끝낸 들판”이라고들 한다. 벼를 재배하는 논을 들판이라 이르는 듯하지만, 굳이 ‘논’을 들판이라 부르는 데에는 까닭이 있을 터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편평하고 넓게 트인 땅이 ‘들’이고 들을 이룬 벌판을 따로 ‘들판’이라 풀이해 놓았다. 편평하고 넓게 펼쳐진 논이 곧 들판인 셈이다. ‘들’과 ‘벌’은 둘 다 ‘아주 넓고 평평하게 생긴 땅’을 가리키는 말인데, ‘들’은 논이나 밭을 포함하고 있는 넓은 땅이란 점에서, 그렇지 않은 ‘벌’과 조금 차이가 있다. 농경국가인 우리나라는 예부터 들판을 갈아 곡식을 키웠기 때문에, 우리의 들판은 대개 논밭을 포함한 넓은 땅이다. 반면 만주 지방의 편평하고 넓게 트인 땅은 기후가 척박하고 습지가 많아 논밭을 일구기 어려우니..

계란야채 토스트

출근길에 지하철을 빠져나오면 땅 위로 올라가기 전에 조그마한 토스트 가게가 있다. 이 가게에서 가끔 달걀부침과 채소를 넣은 토스트를 사서 사무실로 가져가 먹곤 한다. 그런데 처음 이곳에서 토스트를 살 때, “달걀채소 토스트 하나 주세요.” 했더니 알아듣지 못했다. 두어 번 거듭 말하니 “아, 계란야채 토스트요?” 하고 내주었다. 그 뒤 서너 달 동안 이 가게에서 같은 토스트를 열 번 넘게 샀는데도, 주인은 아직 선뜻 알아듣지 못하고 꼭 ‘계란야채’임을 확인시킨 뒤 내어주고 있다. 둘 다 고집쟁이이다. 지난날에 ‘비행기’를 ‘날틀’로 쓰자는 것이 토박이말 쓰기 운동인 것처럼 우리말 운동가들을 조롱했던 이들이 있었다. 토박이말 쓰기 운동은, 지금 쓰고 있는 한자말을 모두 순 우리말로 쓰자는 것이 아니라, 한..

북새통

서른 해 가까이 광화문 쪽 일터에 드나들다 보니 갖가지 집회와 소음에 익숙해져 버렸다. 창밖으로 들리는 확성기 소리, 뜻 모를 구호나 선동에도 아랑곳없이 학술지와 월간지 교정 교열을 거뜬히 해낼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편집자는 간행 날짜를 맞추기 위해 때로는 주말 출근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요즘 토요일 출근은 꿈도 꾸지 못한다. 아무리 30년 내공이 쌓였어도, 땅이 흔들리는 듯한 광화문 네거리의 북새통에는 견딜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북새통’은 많은 사람이 들끓어 북적북적한 상태를 나타낸 말이다. 예를 들면 전쟁 같은 난리 통을 북새통이라고 한다. 그리고 여럿이서 어떤 일을 방해하는 것을 ‘북새질치다’, ‘북새놓다’고 하며, 그런 판이 벌어진 곳을 ‘북새판’이라 한다. 그렇다면 이 ‘북새’란 말의 유..

홀아비김치

온종일 가게 일에 시달리다가 밤늦어서야 돌아오는 아내가 안쓰러워 대신 맡게 된 집안 일이 벌써 스무 해가 넘도록 이어지고 있다. 퇴근하고 짬짬이 돌보는 살림이라 크게 힘들 것은 없지만, 날마다 식탁 꾸리는 일은 여전히 신경 쓰인다. 게다가 입동을 앞둔 요즘에는 싱싱한 채소가 귀해지면서 반찬 장만하기가 어려워졌다. 이럴 때는 묵은 김치를 많이 먹게 되는데, 김치 가운데 “굵기가 손가락보다 조금 큰 어린 무를 무청째로 여러 가지 양념을 하여 버무려 담근” 김치가 있다. 바로 총각김치이다. 지난날 우리 겨레는 성년이 되기 전 사내아이의 머리를 땋아서 뒤로 묶어 늘어뜨렸다. 그렇게 땋은 머리를 양쪽으로 갈라 뿔 모양으로 동여매기도 했는데, 그 모습을 ‘총각’이라고 했었다. 그런 머리를 한 사람은 대개가 장가가기..

벽창호

매우 우둔하고 고집이 센 사람을 가리키는 ‘벽창호’라는 말이 있다. 언뜻 벽창호라 하면 벽에 창문 모양을 내고 벽을 쳐서 막은 부분이 떠올려진다. 빈틈없이 꽉 막힌 벽이 고집 센 사람의 우둔하고 답답한 속성과 잘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을 가리키는 관용어 ‘벽창호’는 건물의 ‘벽창호’(‘벽’과 ‘창호’를 합한 복합어)와는 전혀 관련 없는, ‘벽창우’(‘벽창’과 ‘우’를 합한 복합어)가 변하여 굳어진 말이다. ‘벽창우’에서의 ‘벽창’은 평안북도의 ‘벽동’과 ‘창성’이라는 지명에서 각각 한 자씩 따와 만든 말이고, ‘우’는 소를 뜻하는 한자말이다. 따라서 ‘벽창우’는 ‘평안북도 벽동과 창성 땅에서 나는 큰 소’가 된다. 이 두 지역에서 나는 소가 매우 크고 억세기 때문에, 고집이 세고 무뚝뚝한 ..

알나리깔나리

‘알나리깔나리’는 아이들이 동무를 놀리는 놀림말인데 ‘얼레리꼴레리’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어릴 때 냇가에서 헤엄치다가 속옷이 물살에 벗겨지자 동무들이 둘러싸고 “얼레리꼴레리~, 고추 봤대요~.” 하고 놀렸던 기억이 난다. 창피했지만 마음을 다치지는 않았다. 이처럼 우리의 전통적인 놀림말은 놀이의 성격을 띤 채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그 나름대로의 독특함으로 우리말을 맛깔스럽게 만드는 데에 한몫을 해왔다. 울산지방에서 구전돼 내려오는 놀림말 가운데 “달았다, 달았다, 황소부지깽이가 달았다.”가 있다. 아주 화가 많이 나 있는 상대방의 화를 자꾸 돋우는 놀림말이다. “불난 집에 부채질한다.”가 직설적인 데 반해, 재미있는 비유로 유희적인 맛을 보태준다. 그리고 경남 고성에서는 “언니뺑이 덧니뺑이 우물가..

호박씨

관용구나 속담 가운데는 주로 민간어원이라 확인할 수는 없는 것들이지만, 재미있는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뒷구멍으로 호박씨 깐다.”는 속담이 있는데, ‘겉으로는 어리석은 체하면서도 남 몰래 엉큼한 짓을 한다’는 뜻이다. 우리 주변에는 이렇게 까놓은 호박씨가 참 많다. 뉴스를 검색할 때마다 호박씨가 우르르 쏟아진다. 그러면 이 속담에는 어떤 이야기가 깃들었을까? 옛날에 아주 가난한 선비가 살았는데, 이 선비는 글공부에만 매달리고 살림은 오로지 아내가 맡아서 꾸려 나갔다. 그런데 어느 날 선비가 밖에 나갔다 돌아와서 방문을 여니까 아내가 무언가를 입에 넣으려다가 얼른 엉덩이 뒤쪽으로 감추는 것이 보였다. 선비는 아내가 자기 몰래 음식을 감춰 두고 혼자 먹고 있다고 의심해서 엉덩이 뒤로 감춘 것이..

산통 깨는 사람들

다 되어 가는 일이 뒤틀리는 것을 “산통이 깨지다”고 한다. 이때의 산통은 점치는 데 쓰는 산가지를 넣은 통을 가리킨다. 산가지는 숫자를 세는 데 쓰던, 젓가락처럼 생긴 물건이다. 산통을 흔든 다음에 산가지를 뽑아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점쳤다. 이때 점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산통을 빼앗아 깨뜨려 버렸는데, 이처럼 어떤 일을 이루지 못하게 뒤집어 버리는 것을 두고 “산통 깨다”고 하게 되었다. 요즘 나라 안팎에서 산통 깨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중국과의 우호적 협상을 바라는 미국 기업인이나 일부 공화당 의원들에게는 홍콩 인권법에 서명한 트럼프 대통령이 그럴 것이다. 남북의 평화 공존을 갈망하는 우리 정부로서는 뜬금없이 미사일을 쏘아대는 북한의 지도자가 그럴 것이고, 입시 사교육 폐해를 줄이고자 학생의 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