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 그믐날 6

분노 대신 풍류와 해학으로 역신을 쫓는 처용무

서울(오늘날 경주) 밝은 밤에 밤늦게 노니다가 / 들어와 잠자리를 보니 / 가랑이가 넷이도다 / 둘은 나의 것이었고 / 둘은 누구의 것인가? / 본디 내 것이지만 / 빼앗긴 것을 어찌 하리오? 신라 헌강왕 때 처용이 지었다는 8구체 향가 입니다. 이 처용가를 바탕으로 한 궁중무용 ‘처용무(處容舞)’가 있습니다. 처용무는 원래 궁중 잔치에서 악귀를 몰아내고 평온을 빌거나 음력 섣달 그믐날 나례에서 복을 빌면서 춘 춤이었지요. 『삼국유사』의 「처용랑 망해사(處容郞 望海寺)」 조에 보면, 동해 용왕의 아들로 사람 형상을 한 처용(處容)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어 천연두를 옮기는 역신(疫神)에게서 인간 아내를 구해냈다는 설화가 나옵니다. 그 설화를 바탕으로 한 처용무는 동서남북과 가운데의 오방(五方)을 상징하는..

26편의 향악이 담긴 『시용향악보』

나례(儺禮)란 민가와 궁중에서 음력 섣달 그믐날에 묵은해의 귀신을 쫓아내려고 베풀던 의식을 말하는데, 『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에 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시용향악보』는 향악의 악보를 기록한 악보집으로 1권 1책으로 되어 있지요. 향악(鄕樂)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사용하던 궁중음악의 한 갈래로, 삼국시대에 들어온 당나라 음악인 당악(唐樂)과 구별되는 한국 고유의 음악을 말합니다. 『시용향악보』에는 악장을 비롯한 민요, 창작가사 등의 악보가 실려 있는데, 그 가운데 가사(歌詞/歌辭)는 모두 26편입니다. 1장에 수록되어 있는 가사 가운데 , 을 비롯한 16편은 다른 악보집에 전하지 않아 귀중한 자료입니다. 이 16편에는 순 한문으로 된 , 한글로 된 , 등이 있고, , 과 같이 가사가 아닌 ‘리로노런..

(얼레빗 4539호) 정초 처음 서는 장에서는 키를 사지 않아

키는 탈곡이 완전히 기계화되기 전까지 농가에선 없어서 안 되는 도구였습니다. 곡물을 털어내는 탈곡 과정에서 곡물과 함께 겉껍질, 흙, 돌멩이, 검부러기들이 섞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키로 곡물을 까불러서 이물질을 없앴지요. 고리버들이나 대나무를 납작하게 쪼개어 앞은 넓고 평평하게, 뒤는 좁고 오목하게 엮어 만듭니다. 키는 지방에 따라서 ‘칭이’, ‘챙이’, ‘푸는체’로도 부르는데 앞은 넓고 편평하고 뒤는 좁고 우굿하게 고리버들이나 대쪽 같은 것으로 결어 만들지요. ▲ 농가에서 없어서 안 되었던 키(왼쪽), 키질을 하는 어머니 "키" 하면 50대 이상 사람들은 어렸을 때 밤에 요에다 오줌싼 뒤 키를 뒤집어쓰고 이웃집에 소금 얻으러 가던 물건쯤으로 기억하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키를 쓰고 간 아이에게 이웃 ..

(얼레빗 4241호) 새해는 글 아는 사람 노릇 할 수 있었으면

“오늘이 바로 섣달 그믐날 저녁이니, 자연히 감개가 무량합니다. 저는 바야흐로 추위를 참느라 신음을 토하면서 혼자 앉아 매우 무료하게 보내고 있었는데, 홀연히 인편을 통해 형이 보낸 편지를 받게 되니, 두 눈이 갑자기 확 뜨이면서 너무나 반가웠습니다.(가운데 줄임) 보내 주신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