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인서 5

(얼레빗 제4965호) 여성 전문직업인이었던 활인서의 무녀(巫女)들

활인서는 조선시대 도성 밖 동ㆍ서쪽에 설치하여 돌림병의 치료와 백성에 대한 구휼활동을 담당하였으며, 도성 안으로 유입되는 돌림병의 전파를 차단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동활인서는 혜화문에서 광희문으로 한 차례 장소를 이전하였으며, 서활인서는 19세기 후반까지 서소문에 있었지요. 지난 2022년 서울역사박물관은 도시 한양을 여성의 시각으로 처음 조명한 서울기획연구 9 《한양의 여성 공간》 보고서를 펴냈는데 여기에는 활인서 얘기도 들어있습니다. 나라에서는 한양도성에 거주하는 무당들을 도성에서 나가게 하거나 관리하기 위해서 무적(巫籍, 무당의 명부)에 등록한 뒤 활인서에 적절하게 배정하여 구료 업무를 맡게 하였으며, 또한 동과 서 양서(兩署) 인근에 계획된 주거공간인 무녀촌(巫女村)을 만들어 이들을 살게 하였지..

영친왕비의 가체를 장식한 대봉잠

영친왕비의 가체를 장식한 대봉잠 몇 년 전 방영된 드라마 에서 훤은 무녀 월이 연우였음을 깨닫고 연우가 있는 활인서로 한걸음에 달려가 감격적으로 재회합니다. 훤은 연우를 편전으로 데려가 과거 연우에게 선물했던 봉잠 ‘해를 품은 달’ 한 쌍을 준 뒤 “하나는 내 달이 돼달라는 청혼의 징표로, 또 하나는 그대가 나의 정비가 되는 날 이곳에서 줄 생각이었는데 이제야 하나가 됐다”며 키스하는 장면이 등장하지요. 조선시대 왕비들이 가체에 꽃던 비녀에는 매화를 새긴 ‘매잠’, 석류를 새긴 ‘석류잠’, 봉황 모양을 새긴 ‘봉잠’, 대나무 마디 무늬를 넣은 ‘죽절잠’ 등이 있는데 그 화려함이 보는 사람 누구나 탄성을 자아내게 합니다. 그 가운데 에 등장했던 봉잠은 머리 부분에 봉황 모양을 새긴 큰 비녀입니다. 국립고궁..

(얼레빗 4394호) 조선시대, 돌림병 환자들 병막에 격리

조선시대에 유행했던 돌림병 곧 전염병은 염병이라고 했던 장티푸스와 천연두, 홍역, 호열자(콜레라를 음차하여 부르던 이름) 등이 주된 것이었다고 합니다. 천연두, 곧 두창은 ‘마마’라고 하는 극존칭을 썼을 정도로 무서워하던 병이었고, 감히 두신(痘神)을 모욕할 수 없다고 해서 약..

(얼레빗 4283호) 조선시대 피해가 컸던 돌림병 대처법

"얼음이 얼어붙는 추운 날에 거동하면 몸을 상하게 할 염려가 이미 적지 않고, 더군다나 지금은 전염병이 갈수록 심해지니, 모시고 따라가는 문무백관들이 모두 재소(齋所, 제사 지내는 곳)에서 밤을 지낼 수가 없고, 빽빽하게 따르는 군졸들 또한 어찌 모두가 아무렇지 않을 수 있겠으며,..

5월 24일 - 보릿고개 이야기 둘, 가난한 사람들을 도운 활인서와 환곡

조선 시대 관청에 활인서(活人署)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태조 1년(1392)에 만든 것으로, 가난한 병자를 무료로 치료해주던 곳이었지요. 이것은 고려 초에 있던 혜민국 제도를 이은 것입니다. 돈이 없어 병이 나도 치료를 받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정말 고마운 존재였을 겁니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