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자 2073

찰나의 우리말 - '막말' 감수성

요즘 우리 귀에 많이 들리는 단어 중 하나가 ‘막말’이다. 최근 들어 막말의 주된 진원지가 된 곳은 바로 정치권이다. 정치권에서 들려오는 정치인들의 막말에 유권자인 국민의 심정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국민이 선택한 국민의 대표자들이니 그에 맞는 품격을 지켜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무색할 지경이다. 그런데 ‘막말’이란 무엇인가? 막말이 무엇인지 알아보려면 사전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막말을 찾아보니, ‘나오는 대로 함부로 하거나 속되게 말함. 또는 그렇게 하는 말’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여기서 ‘함부로’란 ‘조심하거나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고 마음 내키는 대로 마구’라는 뜻이고, ‘마구’란 ‘몹시 세차게. 또는 아주 심하게’이며, ‘속되다’란 ‘고상하지 못하고 천하다’라는 뜻이다. 이 뜻들을 ..

[알기 쉬운 우리 새말] 여행 규칙 아닌 ‘트래블 룰’

외국어로 된 신조어를 문장 속에서가 아니라 앞뒤 맥락 없이 만났을 때 종종 그 뜻을 오해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트래블 룰’(travel rule)이 바로 그랬다. 고백하건대 처음 이 용어를 접했을 때 당연히 여행 용어인 줄 알았다. 코로나 대유행 이후 외국 여행에 제약이 많아지면서 생겨난 규약이나 제도라고 짐작한 것이다. 그런데 아뿔싸, 금융 용어였다. ‘트래블 룰’의 뜻은 “온라인에서 가상자산이나 자금을 주고받을 때 자금 세탁 등을 방지하기 위해 주고받는 사람의 정보를 기록하게 하는 원칙”이라고 한다. 그런데 자산의 이동에 대한 제도를 일컫는 말에 ‘유통’, ‘거래’, ‘자금이동’ 등의 용어를 쓰지 않고 하필 ‘여행’이라는 말을 써서 헷갈리게 했을까. 이는 이 용어가 미국에서 ‘직수입’됐기 때문에 ..

아 다르고 어 다른 우리말 - 행복과 복, 같은 듯 다른 쓰임새

우리는 무엇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은 대학 간판과 연봉, 그리고 좋은 집이 행복의 조건이라고 여긴다. 또 다른 사람은 권력을 손에 쥐면 행복할 거라고 여기며 평생을 분투한다. 인생은 ‘한 방’, 행복도 ‘한 방’에 결정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많은 사람의 소원이 로또 1등인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한편 가족, 연인, 친구 같은 친밀한 인간관계가 진정한 행복의 비결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요즘에는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사랑하는 반려동물과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는 일과 같은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줄여 이르는 말)’을 강조하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사람들이 바라는 행복에는 이처럼 정해진 답이 없다. 행복을 찾아가는 길은 수천 개일지라도 행복이 ..

‘노마드 워커’는 ‘유목민형 노동자’로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박보균, 이하 문체부)와 국립국어원(원장 장소원, 이하 국어원)은 ‘노마드 워커’를 대체할 쉬운 우리말로 ‘유목민형 노동자’를 선정했다. ‘노마드 워커’는 근무 시간이나 근무 장소에 제약되지 않고 자유롭게 일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문체부는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의 하나로 국어원과 함께 외국어 새말 대체어 제공 체계를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문체부와 국어원은 지난 9월 7일(수)에 열린 새말모임*을 통해 제안된 의견을 바탕으로 의미의 적절성과 활용성 등을 다각으로 검토해 ‘노마드 워커’의 대체어로 ‘유목민형 노동자’를 선정했다. * 새말모임: 어려운 외래 용어가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다듬은 말을 제공하기 위해 국어 유관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 이에..

정겨운 토박이말과 문학의 향기 - 통영 편

통영은 예향의 도시라고 불릴 만큼 소설가, 시인, 음악가, 화가 등 수많은 예술가를 낳았다. 특히 아름다운 글을 남긴 문인들이 많다.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골목골목을 걷다 보면 정겨운 우리말을 재발견하게 된다. 서울에서 자동차를 타고 대진고속도로를 5시간쯤 달리면 우리나라의 남쪽 끝인, 통영에 도착한다. 첫 목적지인 박경리기념관까지는 400킬로미터쯤 된다. 이토록 먼 거리를 한달음에 달려온 이유는 조금 남다르다. 그 흔한 먹고 쉬는 여행이 아닌, 느긋하게 우리말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여행이기 때문이다. 부슬비가 내렸다가, 다시 햇빛이 쨍하게 비춘다. 이번 통영 여행은 변덕스러운 날씨와 함께다. 우리말을 따라 느루 거닐다. 박경리기념관 박경리기념관은 통영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산양읍에 자리 잡고 있다. ..

찰나의 우리말 - 가족 호칭에 관심이 필요한 이유

5월도 벌써 다 가고 있다. 가정의 달 5월을 보내며 가족과 관련된 언어 문제를 생각해 보려 한다. 행복한 가족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는 모두 행복한 가족을 바라고 꿈꾼다. 그런데 행복한 가족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리나≫의 시작 부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행복한 가정의 사정은 다들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잘 관찰해 보면 분명히 일반화할 수 있는 행복의 조건을 발견할 수 있는 것 같다. 필자가 발견한 행복한 가족이 지닌 행복의 조건은 ‘소통’이다. 행복한 가족들은 공통적으로 가족 사이에 소통이 잘 이루어진다. 만나면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서로 주고받으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다.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 만나..

신 고사성어 - 무용지용 無用之用,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을 들어 봤을 것이다. 자손이 빈한해지면 선산先山의 나무까지 모조리 팔아 버리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줄기가 굽어 볼품없는 나무는 그대로 남게 된다는 말이다. 이 속담에는 ‘줄기가 굽은 나무는 쓸모가 없어 팔 데가 없다’는 가치 판단이 들어 있다. 어쨌든 이 쓸모없어 보이던 나무가 쓸모 있는 나무들을 대신해 조상의 묘를 지키게 되는 것이다. 사진가 배병우가 찍은 소나무 사진에는 이런 소나무들이 가득하다. 굽어서 산을 지킬 수밖에 없게 돼 버린 나무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진에는 얼마나 아름답게 찍혀 있는가. 『장자』 「인간세人間世」 편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초나라의 미치광이 접여接輿가 말한다. “산에 있는 나무는 사람들에게 쓰이기 때문에 잘려 제 몸을 해치고,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