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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를 50년 동안 스승으로 모시고 추사체 글씨와 그림을 배웠던 우봉(又峰) 조희룡(趙熙龍,1789∼1866)은 중인 출신의 화원이었습니다. 빼어난 그림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로 알려진 화원 조희룡은 벼루를 극진히 사랑했던 사람이었지요. 그는 자신의 서재 이름도 ‘백 두 개의 벼루가 있는 시골집’이란 뜻으로 “백이연전전려(百二硯田田廬)”이라 할 정도였습니다.
그가 벼루를 좋아했던 것은 쉽게 뜨거워졌다가 쉽게 차가워지는 염량세태(炎凉世態) 속에서 벼루는 언제나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으며, 벼루는 군자를 가깝게 하지만 소인을 멀리한다고 생각한 까닭이었지요. 그러나 그렇게 아끼던 벼루도 그가 유배에서 풀려나 돌아왔을 때는 모두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눈앞에 벼루가 남아 있지 않았어도 매화를 잘 그렸던 그는 매화가 활짝 필 때면 그토록 아끼던 벼루를 꺼내 여전히 먹을 갈았지요. 평생 가슴속에 담아둔 벼루는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은 살면서 눈엔 보이지 않지만 가슴속엔 늘 남아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는 우리에게 묵묵히 말해주고 있지요. 시ㆍ서ㆍ화 삼절(三絶)의 예인 조희룡처럼 우리의 가슴 속에 담아둔 것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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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악속풀이 2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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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영기, 정성으로 국악을 지키고 이웃을 섬기는 소리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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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속풀이에서는 인천이 낳은 국악계의 풍물 명인, 지운하의 풍물인생 60주년을 기념하여 공연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나와 지운하 명인이 가깝게 인연을 맺게 된 것은 한중 학술 및 실연교류회장에서의 만남이었다는 이야기, 동포에게 우리말을 가르치는 일과 함께 우리의 소리나 장고, 꽹과리 가락이 절대적인 힘이 된다는 사실을 나와 지운하는 공감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는 고향땅 인천에서 동네 어른들이 치는 풍물굿을 자주 들으며 자랐고, 숭의초등학교 시절부터 풍물굿을 배웠으며, 당시의 숭의풍물단이 전국대회에서 수상하면서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는 이야기, 그 뒤 남사당의 각종 예능을 두루 익히면서 이 분야의 정상급 명인이 되었다는 이야기, 그는 조직의 하위그룹인 <삐리>생활을 하면서 스승을 봉양하였고, 구성원들의 기본질서가 무너지면 그 조직은 경쟁에서 낙오할 수밖에 없다는 철학을 배웠다는 이야기도 하였으며, 지금은 고향땅에서 주민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길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성남의 문화예술인으로 전통문화 살리기에 앞장서 온 방영기씨가 올해에도 어김없이 그의 소리인생 45주년을 기념하는 발표회를 준비하고 있다고 해서 그를 속풀이 독자들에게 소개해 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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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영기 명창은 나라가 지정한 무형문화재 제19호 <선소리 산타령>의 전수교육조교로 활동하고 있는 전문 국악인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국가지정 무형문화재라고 하는 말은, 말 그대로 역사적으로 그리고 학술적, 예술적으로 가치가 있는 무형(無形)의 종목을 나라에서 문화재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 <선소리 산타령>이란 종목를 보존하고 전승시키기 위해서 국가에서는 예능보유자(세칭 인간문화재)를 인정해서 동 종목이 단절되지 않도록 소질 있고 능력 있는 젊은이들을 가르쳐야 한다. 예능보유자를 도와 후진을 교육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을 일컫는 말이 곧 전수교육조교이다. 과거에는 보유자후보, 또는 준보유자 라는 이름을 쓰기도 했다.
<선소리 산타령>이란 어떤 노래인가? 여기에서 <선소리>란 서서 부르는 형태라는 입창(立唱)의 뜻이다. 그리고 <산타령>은 이름 그대로 산을 노래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노래는 혼자 부르는 형태가 아니라, 여러 명이 소고(小鼓)를 들고, 대형을 갖추면서 불러온 합창곡이다. 이 노래는 음악적으로도 다양한 특징들을 지니고 있다.
우선 한 사람의 지휘에 따라 여러 사람이 늘어서서 다양하게 모양을 만들고 동작을 통일시켜 가면서 활달하고 씩씩하게 부르는 노래이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은 이내 신명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러나 구호(口號), 곧 입타령이 많고 장단이 들쑥날쑥하며, 고음역의 선율을 통성으로 질러대는 부분이 길어서 이를 여러 사람이 강약을 조절하며 호흡을 맞추기가 어려운 노래가 또한 <선소리 산타령>이다.
박자에 따라 4개의 악장, 즉 놀량, 앞산타령, 뒷산타령, 자진산타령 등 악장의 구분 개념이 분명하고, 단순하게 이어지는 아~, 또는 이~등의 모음(母音)으로 이어지는 입타령이 많고, 장단은 불규칙 리듬이 많다는 점, 활달한 창법과 함께 소리를 떠는 기교와 흘러내리는 퇴성 등 경기지방의 섬세한 표현법이 녹아 있다는 점, 그리고 가사의 내용이 매우 건전하여 청소년 교육에 적합하다는 점, 등이 산타령의 음악적 특징이라 할 것이다.
이번에 방영기 명창과 그의 제자들이 부르는 산타령은 일제강점기 왕십리패들이 부르던 전통의 소리로 구한말 왕십리패의 모갑이었던 이명길의 소리제이다. 이 소리제는 벽파 이창배 사범이 이어받아서 1960년대 말, 산타령이 문화재로 지정될 당시, 최초 예능보유자로 인정을 받았고, 다시 그의 제자들인 황용주와 최창남 등이 현재 예능보유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들로부터 방영기에게 이어진 귀한 소리제인 것이다.
이처럼 귀한 소리이기는 하나 아쉬운 점은 경기소리 중에서도 <산타령>의 자생력은 매우 약하다는 점이 안타깝다. 대안을 마련하고 확대운동을 서두르지 않으면 자칫 위기를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어서 이에 대한 근본적인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고 확산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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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도 이를 활성화 해 나가야 할 주체는 <산타령>을 전승하고 있는 보존회의 소리꾼들의 역할이 첫 번째이다. 수준 높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 더욱 열심히 갈고 닦아야 함은 물론, 적극적으로 움직여 청중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앉아서 애호가들이 모여 들기를 기대해서는 안 될 일이다. 둘째는 지원자인 문화재청을 설득하여 비인기 종목에 대한 특별 육성책을 강구토록 노력해야 하는 학계나 전문가의 조언이다.
가령 보유자나 전수조교의 수를 지정당시의 수준으로도 유지시켜 주지 않으면서 산타령의 활성화 방안이나 확산을 기대하거나 논의하는 자체는 가능치 않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국악계의 폭넓은 관심도 활성화의 지름길이다. 대중들로부터 인기가 있는 특정 분야만을 자주 무대 위에 올리는 편향된 사고에서 탈피해야 한다. 또한 무엇보다도 대학에서의 전공자 양성이 시급하고 교육현장의 관심도 중요하다. 근래 이루어지고 있는 초 중등학교의 특기적성이나 동아리 교육에 <산타령>과 같은 노래가 적합한 이유를 알리고 교육주체를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할 것이다.
<산타령>은 한국의 유명한 산이나 강, 지역의 이름, 등을 비롯하여 산천경개를 두루 노래하기 때문에 사설의 내용이 매우 건전하고 상식이 풍부해 진다는 점, 여러 명이 대형을 이루며 합창으로 부르기 때문에 공동체로서의 협동심을 키울 수 있다는 점, 소고를 치면서 다양한 리듬감을 직접 몸으로 익히게 된다는 점, 그리고 씩씩하고 활달한 창법이나 다양한 표현법을 익힐 수 있다는 점 등이 그 장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방영기 명창은 산타령 이외에도 경기소리 전반을 열심히 섭렵해 왔는데, 특히 힘이 실려 있는 소리, 타고난 목청으로 고음을 무리 없이 질러내는 점이나, 어렵고 까다로운 기교와 창법, 그리고 사설의 이해가 정확한 점 등은 크게 인정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간 방영기의 모습은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매우 진지하고 열의가 대단하다는 점, 정성으로 이웃과 스승을 섬기는 마음이 돋보이는 사람으로 평판이 높다. 전통은 진정 우리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질서의 기반일까?
방영기의 무대를 통해 <산타령>을 비롯한 전통의 우리가락들이 얼마나 신명나고 건강한 노래인가를 재확인 시켜주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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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한 범 / 단국대 명예교수, 한국전통음악학회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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