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아궁이 속으로 들어갈 뻔 했던 정선의 <해악전신첩>

튼씩이 2015. 12. 3. 07:57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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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4348(2015). 12. 3.



1930년대 초, 골동상 장형수는 친일매국노라 불리는 송병준의 집 근처를 지나다가 나라를 팔아 얼마나 잘 사는가 보자고 그 집을 구경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는 사랑채 옆에 있는 변소에 가다가 그 집 머슴이 사랑채 아궁이에 군불을 때는 것을 보았는데 이때 아궁이에 넣으려는 초록색 비단으로 꾸민 책 한권이 눈에 띕니다. 그래서 그 책을 뒤져보니까 겸재 정선의 화첩 <해악전신첩(海嶽傳神帖)>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송병준의 손자로부터 이 화첩을 사서 간송 전형필 선생에게 넘기게 됩니다. 이렇게 간송미술관의 수장품이 된 “바다와 산의 초상화”라는 뜻의 이 <해악전신첩>은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년)이 금강산을 여행하며 그린 것으로 그림 21점과 각각의 그림에 붙인 화제(畵題, 그림 위에 쓰는 시와 글) 21점으로 이뤄졌는데 “단발령에서 금강산을 바라보다”라는 뜻의 ‘단발령망금강(斷髮嶺望金剛’ 같은 뛰어난 작품이 들어 있습니다.

하마터면 아궁이 속으로 들어갈 뻔 한 이 <해악전신첩>은 우리에게 그 모습을 보여줄 운명이기도 하였지만 당시 온 재산을 팔다시피 해서 우리의 귀중한 문화재들을 사서 보관한 일제강점기 문화재 지킴이였던 간송(澗松) 전형필(1906~1962) 선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귀한 문화재들을 사면서 값을 깎지 않고 오히려 더 쳐주었다는 간송 선생이야말로 정말 훌륭한 분이 분명합니다.

옛 얼레빗 (2011-12-05)


2210. 마을을 감아도는 또랑과 또랑광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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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차(維歲次) 단기 4344년 11월 24일 길시를 택하여, 여기 아무개 집에서 대주(남자 집주인) 아무개와 그 식구들이 모여 상량을 하게 되어 천지신명과 성주신께 상량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자리를 마련하였사옵니다. 한옥짓기에 조상의 기술을 이을 수 있도록 해주시옵고 이 과정을 통해 조상의 슬기와 지혜, 삶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시옵고, 여기에 함께 모든 이에게 사고가 없기를 삼가 비옵나이다. 나름대로 정성껏 준비한 술과 음식을 올리니 삼가 흠향(歆饗)하여 주시옵소서.”

위 내용은 집을 새로 짓고 상량식을 할 때 읊는 축문(祝文)입니다. 기둥 위에 보를 얹고 지붕틀을 꾸민 다음 마룻대(상량)를 놓을 때 올리는 고사가 상량고사이지요. 한옥의 경우 마룻대를 올리면 외형은 마무리되고 이후부터는 벽을 치고 마루를 놓는 따위의 내부공사로 들어가게 되므로, 상량을 올리는 일은 큰 고비를 넘기는 중요행사입다. 따라서, 상량고사에는 지금까지의 노고를 자축하고 새로운 과정을 시작하는 다짐의 뜻이 포함됩니다.

상량고사를 건축의례 가운데 가장 성대히 지내는 것도 이 때문이지요. 제물로는 떡ㆍ과일ㆍ술 따위를 마련하나, 그 내용이나 양은 주인의 살림 형편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흔히 돼지는 머리만을, 쌀은 한 바가지쯤 떠놓으며, 무명·모시·광목 따위의 옷감을 바치기도 하지요. 그리고 마룻대에는 상량문(上樑文)이라 하여 집 지은 해ㆍ달ㆍ날ㆍ시ㆍ축원문 따위를 마룻대 받침도리 바닥에 써놓습니다. 또 좌우 양끝에는 ‘龍(용)’자와 ‘龜(구)’자를 서로 마주 대하도록 써둡니다. 용과 거북은 물의 신(水神)이므로 이렇게 적어두면 화재를 막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지요.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소장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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