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오늘은 소한, 혹독한 추위를 일컫는 ‘동장군’은 일본말

튼씩이 2016. 1. 7. 17:13

날마다 쓰는 한국문화 편지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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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4349(2016). 1. 6..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스물셋째인 소한(小寒)입니다. 소한은 양력으로 해가 바뀌고 처음 오는 절기지요. 원래 절기상으로 보면 대한(大寒)이 가장 추운 때지만 실제는 소한이 한해 가운데 가장 추운데 절기의 기준이 중국 화북지방에 맞춰졌기 때문에 조금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동장군(冬將軍)”이라고 말합니다. 이 ‘동장군’이란 말의 유래는 무엇일까요?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동장군을 “겨울 장군이라는 뜻으로, 혹독한 겨울 추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짧게 설명해 언제부터 어떻게 쓰이기 시작했는지 그 유래를 알 수 없게 해놓았습니다.

《사쿠라훈민정음, 이윤옥 인물과사상, 2010》에 따르면 이 말은 일본말에서 온 말로 일본국어사전 《다이지센(大辭泉)》에는 “ふゆしょうぐん【冬將軍】:《モスクワに遠征したナポレオンが、冬の寒さと雪が原因で敗れたところから》冬の嚴しい寒さをいう語。”로 되어 있는데 번역하면, 동장군은 모스크바에 원정 간 나폴레옹이 겨울 추위와 눈으로 패하게 된데서 나온 말로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일컫는 말이라고 합니다. 덧붙이자면 1812년 러시아-프랑스 전투에서 혹독한 날씨 탓으로 무너진 프랑스 군대를 보고 영국기자가 말한 ‘general frost’를 일본에서 ‘동장군’으로 번역한 것을 우리가 들여다 쓰는 꼴이지요.

따라서 동장군은 '장군(쇼군, 사무라이)문화’ 700년을 거친 일본에서 근세에 생긴 말입니다. 그럼 동장군이란 말이 들어오기 전에 우리나라에서는 뭐라 했을까요? 조선 중기 계곡(谿谷) 장유(張維) 선생의 시문집 《계곡집(谿谷集)》에 “현명(玄冥)”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형살(刑殺)을 담당하는 북방의 신(神)”을 뜻하며 곧 동장군(冬將軍)을 뜻하는 말이지요. 그렇다고 “현명(玄冥)”이라는 말을 쓰자는 것은 아니며, 다만 동장군이라는 말의 유래라도 알고 쓰자는 것입니다. 겨울 추위 가운데 가장 매섭다는 소한, 어려운 이웃이 있는가 돌아보는 마음의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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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이야기 331 >

일본 속의 조선문화를 21년간 캔 김달수 선생



김달수 선생(1919-1997)이라고 하면 나는 왠지 모를 그리움을 갖고 있다. 선생을 만난 것은 책을 통해서였지만 왜 진작에 살아 계실 때 찾아뵙지 못했나 하는 후회도 든다. 선생은 장장 21년 동안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며 그곳에 남아있는 조선과 관련된 유적지를 생생하게 답사 형식으로 글을 써서 일본인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선생이 발로 뛰어 현장을 확인하고 쓴 《일본 속의 조선 문화(日本の中の朝鮮文化)》라는 책은 일본어로 쓰여졌다. 이 책은 모두 12권으로 1970년에 시작되어 1991년 12권으로 마무리 되었다. 그는 <12권>째 머리말에서 이렇게 장기간에 걸쳐 이 책을 쓰게 되리라고는 생각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21년 동안 일본 땅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고대 한국의 문화 유적지를 찾아다닐 수 있었던 것은 남다른 '한국 고대문화'에 대한 관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김달수 선생은 일본의 “황국사관”에 대해 매우 우려를 했다. 그는 《일본 속의 조선 문화》를 쓰면서 숱한 독자들로부터 편지를 받았다고 했다. 오사카에 사는 한 독자는 "일본의 역사는 다시 써야한다."고 했으며 선생의 일본 속의 조선 문화 유적지 글을 본 독자들이 앞 다투어 자기 지역에도 와서 역사적인 사실을 조사해달라는 의뢰를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들은 자기 지역에 남아 있는 고대 한국 관련 유적지의 실체를 알고 나서 자신들이 제대로 된 일본 역사를 배우지 못했다고 생각해서 "일본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김달수 선생은 10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 갖은 고생 끝에 일본대학 예술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가나가와 신문(神奈川新聞)〉기자를 거쳐 해방 뒤에는 〈민주조선(民主朝鮮)〉이란 잡지를 창간했고, 여기에 일제강점하 한국 민족의 고뇌와 저항을 그린 작품 〈후예의 거리〉를 연재해 작가로서 정식 등단하게 된다. 이어 재일교포 차별문제를 주제로 한 〈현해탄〉·〈박씨들(박달)의 재판〉·〈태백산맥〉·〈밀항자〉 등의 작품을 잇달아 내놓아 작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는 동시에 일본사회에서 주목 받는 작가의 위치를 굳혔다.

〈아사히 신문(朝日新聞)〉은 그의 작품이 “조선인들의 진실한 삶을 일본인 앞에 드러냄으로써 조선인에 대한 일본인들의 인식을 바꿔 보려는 시도를 일관된 문학적 주제로 삼고 있다.”고 평했다. 나 역시 선생의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그러한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또한 12권에 이르는 《일본 속의 조선 문화》 책을 읽으며 종종 일본 답사를 하고 있지만 아쉬운 것은 한국인 독자를 위해 이 책의 한글 완역본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회가 닿는다면 나 역시 선생의 발자취를 쫓아 12권에 해당하는 지역을 돌아보고 싶다.

* 일본한자는 구자체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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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59y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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