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장도(銀粧刀)는 주머니 속에 넣거나 옷고름에 늘 차고 다니는, 칼집이 있는 작은 칼을 말합니다. 은장도를 차는 풍습은 고려가 원나라에 복속한 뒤부터 시작되어 조선 시대에는 널리 퍼졌습니다. 보통은 여성들이 호신용으로 차고 다녔습니다만 원래는 남녀 구분 없이 평복에 차는 노리개의 하나였지요.
《승정원일기》 인조 3년(1625)에 보면 “은장도(銀粧刀) 200자루〔柄〕, 석장도(錫粧刀) 400파(把)는 전혀 수량을 채울 방도가 없습니다. 이 뒤에 또 무슨 변괴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매우 걱정스럽습니다. 감히 아룁니다”라는 기록이 보입니다.
은장도는 중국에 사절단으로 가는 사행원들이 일종의 국경검문소인 책문(柵門)에서 통관 절차를 집행하는 봉성장군(鳳城將軍)과 그 아래 사람들에게 주는 뇌물로 많이 쓰였습니다. 또 사행원과 직접 접촉하는 북경 숙소의 제독(提督)이나 예부(禮部)의 관리들이 사적으로 많이 요구했답니다. 금과 은은 당시 존비귀천을 가리는 기준이 되었기에 누구나 욕심을 냈고 그래서 사행원들은 고마움을 표하는 예물이나 뇌물 용도로 자주 썼지만 은장도를 대야 하는 조정에서는 골치 아팠을 겁니다.
지금 이 은장도를 만드는 장인은 1978년 2월 23일 중요무형문화재 제60호로 지정된 장도장(粧刀匠)인데, 전남 광양의 박용기 선생이 천 년의 맥을 잇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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