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문집인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복암(茯菴)이 일찍이 선중 씨의 집에 칠실파려안을 설치하고, 거기에 비친 거꾸로 된 그림자를 취하여 화상을 그리게 했다. 공은 뜰에 놓은 의자에 해를 마주하고 앉았다. 털끝 하나만 움직여도 초상을 그릴 길이 없는데, 흙으로 만든 사람처럼 굳은 채 오래도록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암실을 만들어 사진 기법을 연구하게 한 실학자 복암(茯菴) 이기양은 한음의 7대손인데 할아버지 한음의 인물평을 보면 “근세에 율곡이 돌아가시자 성균관의 학도들이나 말단 군졸들까지 모여들어 슬프게 울었고, 서애 유성룡의 죽음에도 저자 사람들까지 모여들어 울었으며, 한음이 죽자 꼭 같은 일이 벌어졌다. 도대체 무슨 은혜를 베풀었기에 위아래 사람 모두가 그렇게 울고 있단 말인가. 성인이 말했듯이 산 사람에게서는 뜻을 뺏을 수 없듯이 죽은 사람에게서는 명성을 빼앗을 수 없어서 그렇다”라는 말이 전해옵니다. 명재상 한음이 세상을 떠난 지 150년 뒤에 태어난 복암과 막역하게 지냈던 조선 최고의 학자 다산 정약용은 복암 할아버지 한음을 흠모하여 ‘한음의 화상(畵像)에 바치는 찬양의 글’을 짓기도 합니다.
조선에 사진이 처음 등장한 것은 정약용 등 실학자들이 현대 사진기의 전신인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 바늘구멍상자)를 ‘칠실파려안’이라 이름 붙이고 연구했던 때로 봅니다. 여기에서 칠실(漆室)은 ‘매우 캄캄한 방’, 파려(玻瓈)는 ‘유리’, 안(眼)은 ‘보다’로, ‘캄캄한 방에서 유리렌즈를 통해서 본다’는 뜻인데 이 기구는 바늘구멍상자의 유리에 비친 화상에 종이를 대고 그린 것으로 복암 이기양이 선구자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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