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조 판서 허조가 ‘신은 폐단이 일어날까 두렵습니다. 간악한 백성이 율문을 알게 되면, 죄의 크고 작은 것을 헤아려서 두려워하고 꺼리는 바가 없이 법을 제 마음대로 농간하는 무리가 일어날 것입니다’라고 하자, 임금이 ‘그렇다면, 백성으로 하여금 알지 못하고 죄를 짓게 하는 것이 옳겠느냐? 백성에게 법을 알지 못하게 하고, 그 범법한 자를 벌주게 되면, 조사모삼(朝四暮三)의 술책에 가깝지 않겠는가. 더욱이 조종(祖宗)께서 율문을 읽게 하는 법을 세우신 것은 사람마다 모두 알게 하고자 함이니.”
훈민정음을 창제하기 1년 전인 1432년 11월 7일 《세종실록》의 기록입니다. 세종이 큰 죄의 조항만이라도 뽑아 적고, 이를 이두문으로 번역하여 백성에게 반포하려 하자 이조판서 허조가 백성이 법을 알면 법을 마음대로 농간하는 무리가 생길까 두렵다며 반대하는 내용입니다. 그러자 세종은 백성이 알지 못하게 하여 자신도 모르게 죄를 짓게 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제하기 전에도 백성과 소통하기를 원했습니다. 그 하나가 효도를 가르치는 《삼강행실도》를 만들어 보급한 것이고, 또 하나는 오목해시계를 만들어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혜정교에 놓아둔 것입니다. 두 가지 모두 글자가 아닌 그림으로 소통하려 한 사례입니다. 그러다 세종은 백성에게 그림이 아닌 글자생활을 하도록 하는 것이 근본적인 대책임을 알고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입니다. 백성을 향해 지극한 사랑을 실천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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