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얼레빗) 3219. 조선시대 사람들의 덕담 “올해엔 부자가 되었다지요?”

튼씩이 2016. 2. 14. 11:25

날마다 쓰는 한국문화 편지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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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4349(2016). 2. 9.



세상의 모든 일과 사물에 좋거나 나쁜 일이 생길 기미가 보인다고 하여 그것을 알려고 여러 가지 점복술이 생겼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청참(聽讖)”입니다. 청참은 새해 첫 새벽거리에 나가서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다가 사람의 소리든 짐승의 소리든 처음 들리는 소리로써 그해의 신수를 점치는 것이지요. 그런데 새해에 하는 덕담도 이 청참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곧 새해 처음 듣는 말에 덕이 있으면 그해 재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일제강점기 최남선(崔南善)은 새해의 덕담은 “그렇게 되라.”고 비손하는 것이 아니라 “벌써 그렇게 되었으니 고맙다.”고 미리 축하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이를테면 “올해엔 부자가 되었다지요?”, “올핸 병이 완쾌되었다지요?”, “올해 시험에 합격했다지요?” 같이 말하는 것입니다. 옛사람들은 말에 주술적인 힘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특히 설날에 하는 덕담은 신비한 힘이 있다고 믿었지요.

“고모님께서 새해는 숙병(宿病)이 다 쾌차(快差)하셨다 하니 기뻐하옵나이다.” 이 글은 숙종임금이 고모인 숙희공주에게 보낸 편지에 들어있는 내용입니다. 숙종은 고모의 오랜 병이 완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숙병이 쾌차했다 하니 기쁘다.”라며 아직 병중이건만 이미 병이 다 나은 것처럼 표현했습니다. 이렇게 조선시대 사람들은 미리 축하의 덕담을 보냈습니다만 지금 사람들은 설날을 맞아 그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는 형식적인 인사만 나누는게 보통입니다. 익숙하지는 않지만 우리도 상대방의 앞날을 미리 예견하여 그것을 축하하는 덕담을 나눠보면 어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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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악속풀이 249 >

송서율창, 이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오를 것



지난주에는 송서관련 학술대회에서 기조강연을 했던 이상만 선생의 <글 읽는 소리>가 참석자들로부터 큰 공감을 얻은바 있어서 그 내용의 일부를 독자들께 소개하였다. 송서(誦書)란 책을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입으로 소리를 내어 읽는 것인데, 높은 음과 낮은 음, 긴 음과 짧은 음의 음가를 구별하면서 그 내용을 노래하듯, 음악적으로 구성지게 표현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라 하였다.

그래서 암기는 물론, 오래도록 앉아 읽을 수 있다는 이야기, 송서나 율창이 일반 시조나 민요와는 조금 다르다는 점은 정형화된 가락이나 고정된 장단체계는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란 점, 악구(樂句)가 대개 숨 단위로 구분되어 있으므로 호흡으로 단락을 맞춘다거나 글자에 따라 높낮이를 구별하고, 무엇보다도 종지형에서 음악적인 규칙을 체득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또 이제는 종이와 책의 시대가 지나고 음성 인식의 시대가 다가 왔다는 점, 과학 문명에 의존하지 않았을 때는 글 읽는 소리가 사람의 영혼을 흔들어 놓았다는 점, 세계의 많은 종족들은 제각기 글 읽는 소리가 있는데, 이것은 모두 세계적 문화유산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얘기했다.

송서·율창의 근원은 당나라와의 교류로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 실례가 당음(唐音)이라는 점, 실제로 당나라 시대의 수도였던 서안에는 고구려악이 그곳에 전수 되었던 기록이 있다는 점, 아악(雅樂) 역시, 중국에는 전해지지 않고 있어 대만 사람들이 우리 것을 배워간 사실을 돌이켜 볼 때, 중국에는 원형이 남아있지 않다는 점, 문화인류학에서 쓰는 “변방잔존(邊方殘存)”, 다시 말해 변두리에 옛것이 많이 남아있다는 점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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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잔존(邊方殘存)의 이론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이 말을 쉽게 이해하려면 이태리의 스파게티의 예나 우리의 옛 음식의 예를 들어보면 간단하다.

이태리의 전통적인 진짜 스파게티를 먹으려 한다면 이태리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이태리 이민이 많이 모여 사는 미국 뉴욕의 리틀 이태리에 가서 먹어야 한다는 말이다. 한국의 옛 문화도 서울과 같은 곳은 그 시대 상황에 따라 늘 변화하는 양상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우리의 옛 음식을 먹으려면 한국의 이민이 많은 미국의 로스엔젤레스에 가야된다는 말과 같은 얘기가 된다.

이상만 선생의 발표내용 중에는 송서 율창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오를 날이 올 것이니 국내에서도 국가유산으로 격상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펴서 주목을 받았다.

“최근 제 지인의 아들이 대만의 대중대학에서 당시(唐詩)를 공부하는데, 한국에서 읽는 방법으로 시를 읽으니까 지도교수가 그것이 진짜 당시대의 발음이라고 하면서 그를 격려해 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금의 송서·율창이 당나라 시대의 소리의 원형을 얼마나 간직하고 있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한자(漢字)의 발음과 같이 상당한 부분의 소리 값이 남아있다는 가정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송서·율창은 거대중국과 공유할 수 있는 문화유산이며 앞으로 반드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나라 국가유산으로 격상시키는 과정을 밟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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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59년경, 지금의 서울중앙방송국에 재직하고 있을 때 국악학회 일을 거들며 불교 음악인 범패를 채집했던 일이 있었는데, 각 지역의 큰 스님들이 독특한 범패를 읊는 것을 발견하고 그 지역의 말씨와 조화를 이룬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귀중한 경험담을 소개하였다.

“1990년 제가 월간 객석의 편집인으로 재직할 때, 정계환이라는 분이 찾아와서 책보에 쌓인 물건을 내보이며 이것을 빛을 보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조선어독본>이라는 고음반 6매였습니다. 정씨는 경희고등학교 교장을 지낸 분으로 만당 이혜구박사의 처남이며 음악을 좋아하는 분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받아들고 회사에서 복각해서 출판할까 고민도 했습니다마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이 음반은 1935년 당시 오케이 레코드사의 이철이라는 분이 조선어 읽는 방법을 가르치는, 지금으로 말하자면 시청각자료로 출판한 것인데, 유성기판 6장 12면으로 72분가량 소요되는 분량입니다. 그 내용은 당시 사범부속초등학교 학생들이 책 읽는 방법을 실제 녹음한 것으로 정계환씨와 사범부속학교 학생들의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지도는 그 학교 선생님 심의란씨가 맡았고, 음성지도는 국어학자인 정인섭씨가 맡았습니다.

그런데 1990년 당시는 복각기술이 약해서 그것을 영국으로 가지고 가서 최상의 기술로 복각을 해서 가지고 있다가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뒤인 2004년에 CD음반으로 내놓게 되었습니다. 1935년 당시 글 읽는 소리를 담았기에 지금은 이 음반을 문화재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지난번 김영운교수의 글에서 경상도 지역의 책 읽는 소리를 채집했다는 말씀을 했습니다. 지금 늦었지마는 이 운동도 확산해서 전국 지역으로 확산하고 또 가능하면 북한, 연변지역과 세계에 나가있는 교포들까지도 확산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935년도 조선어를 가르치면서 녹음한 시청각자료이기에 그 국문학적인 학술 자료로나, 또는 음악적 자료로 그것에 대한 희귀성이나 귀중함은 충분히 인정되고도 남을 것이다. 지금부터 80여 년 전의 초등학생들이 어떤 방식으로 책을 읽었을까? 첫 부분의 음고(音高)는 어떻게 잡았고, 어느 부분을 올리고 어느 부분은 낮게 읽었을까? 숨은 어떻게 조절하였고, 문장의 구절은 또한 어떻게 떼었고 종지는 어떠한 방법으로 맺었을까 호기심이 증폭되는 것이다.

그는 또한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 스물여덟글자를 창제 하셨지만, 지금은 스물네 글자만 쓰고 있는 점에 그만큼 우리의 표현 영역이 축소되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넉자를 더 보태면 글자 수는 40배가 증가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IT시대에 이는 너무나 간편하게 쓸 수 있습니다. 지금 제주도에서는 28자를 다 쓰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진성기라는 한글학자가 계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한글이 과학적인 글자라는 데에는 누구도 의심이 없습니다. 사람의 소리는 영혼의 소리입니다. 그래서 축문이나 종교의 의식에서 소리 내며 읊는 전통이 이어지는데 이제는 영혼의 소리를 글 읽는 소리에서 다시 찾기를 바랍니다." 라고 마무리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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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한 범 / 단국대 명예교수, 한국전통음악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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