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보며
유관순 누나를 생각합니다
옥 속에 갇혀서도 만세 부르다
파란 하늘 그리며 숨이 졌대요
삼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보며
유관순 누나를 불러봅시다
지금도 그 목소리 들릴듯하여
푸른 하늘 우러러 불러봅니다
우리는 어렸을 적 3·1만세운동기념일만 되면 3·1절 노래보다는 이 ‘유관순’ 노래를 더 많이 불렀습니다.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로 아우내 장터에서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며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체포되어 옥사한 유관순(柳寬順, 1902. 12. 16. ~ 1920. 9. 28.). 충남 천안에서 태어나 이화학당 고등과에 다니던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학생들과 함께 거리시위를 벌였고, 천안·연기·청주·진천 등지의 학교와 교회 등을 방문하여 만세운동을 협의, 4월 1일 아우내〔竝川〕 장터에서 3,000여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주며 시위를 이끌다가 출동한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었습니다. 그 뒤 5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 중 고문에 의한 방광파열로 옥사했습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지요.
뜻밖에 유관순 열사는 당시 유행하던 귀밑머리, 황새머리, 조랑머리 등을 하고 아이들과 어울려 진뺏기와 술래잡기를 하던 평범한 소녀였고 '무쇠 돌격 청년 남아야'와 같은 우국 창가를 즐겨 불렀다고 합니다. 또 이화학당 시절 우스운 말을 곧잘 해 친구들에게 인기를 끌었을 만큼 그는 남달랐던 천재나 위인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정 많고 따뜻한 소녀였다고 하지요.
유관순은 우연히도 프랑스의 잔다르크처럼 농부의 딸로 17살에 떨쳐 일어나 적국에 잡혀 타협을 거절해 순국했기에 한국의 잔다르크라고도 불립니다.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이 말이 유관순의 유언이었다고 하지요. 그저 평범했던 한 소녀가 나라를 구하고자 떨쳐 일어나 19살의 아리따운 나이로 90여 년 전 오늘 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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