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정유재란의 만행인 교토 코무덤이 있는 한 임진왜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임진왜란은 누구나 알다시피 1592년부터 1598년까지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의 명에 따라 왜군들이 조선 땅을 짓밟은 사건입니다. 그 임진왜란이 끝나게 되는 계기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이순신의 연전연승입니다. 이순신은 1598년 11월 19일 노량해전을 크게 승리로 이끈 다음 삶을 마감합니다. 그 뒤 왜군은 50여 척의 배만 남아서 도망가게 되고 이후 조선은 전란의 뒤치다꺼리를 합니다. 그래서 임진왜란이 끝나는 날을 이순신이 죽은 11월 19일로 보기도 하고 늦춰 잡아 11월 27일로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 임진왜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현재진행형입니다. 그것은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많은 것을 노략질해 간 그들이 아직도 반성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지요. 특히 정유재란 때 남원 전투에서 수많은 조선인의 코를 베어다 묻은 코무덤이 일본 교토에 있는데 그들이 이를 왜곡하여 귀무덤이라고 하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일본인 유학자 하야시 라잔이 "잔인하니 귀무덤이라고 부르자"라고 한 데서 시작된 이 왜곡을 우리 한국인들도 그대로 따라 부른다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분명히 코는 코고 귀는 귀입니다. 코가 귀로 변할 수는 없는 것이며, 또 코와 귀는 잔인성 면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히데요시는 당시 부하들의 전투를 독려하려고 코를 베게 한 것입니다. 그자는 코를 바친 부하들에게 코영수증을 발행하고, 코감사장까지 써준 흉악범입니다. 그렇게 벤 코를 2,000개씩 상자에 담고 소금에 절여 가져갔다고 하는데 히데요시는 이를 일일이 세기까지 했다고 하지요. 그리곤 마치 은혜를 베풀 듯 불쌍해서 묻어주었다고 코무덤 앞 비석에 뻔뻔스럽게 써놓았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코무덤을 귀무덤이라고 불러야 하나요? 용서는 잘못한 사람이 뉘우칠 때 가능한 것입니다. 한국인들은 일본 교토를 여행할 때 다른 관광지만 돌아볼 것이 아니라 이 비극의 현장 코무덤에 들러 일본의 만행을 질타하고 원혼의 코무덤이 고국 땅 남원으로 돌아올 수 있게 깊은 관심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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