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게시판/하루하루가 잔치로세(김영조)

12월 17일 - 장옷, 쓰개치마, 너울은 차도르와 닮았지요

튼씩이 2018. 12. 17. 09:37

이슬람교도 여인들은 다른 사람에게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고 '차도르'를 씁니다. 그 가운데는 머리 전체를 싸매고 눈 부분만 레이스를 대 겨우 앞을 볼 수 있는 것도 있지요. 그런 것이 바로 우리 조선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사헌부에서 상소하였다. 일. 대소 인민은 부모상(父母喪)에 쓸 관곽(棺槨)은 시신(屍身)이 들어갈 만큼 하게 하고, 높고 크게 하지 말게 하소서. 일. 일죄(一罪) 이하는 저화(楮貨)로 수속(收贖)하는 법을 없애게 하소서. 일. 부인(婦人)이 출입할 때에는 반드시 그 얼굴을 가리고, 입모(笠帽)를 걷어 올리지 말게 하소서.”

 

위는 <태종실록> 24권, 12년(1412) 11월 14일(양력 12월 17일)에 보이는 기록입니다. 이처럼 조선 시대는 초기부터 여인네들이 바깥나들이를 할 때는 얼굴을 가리게 했습니다.

 

얼굴을 가릴 때에는 장옷이나 쓰개치마, 너울 따위를 뒤집어쓰고 얼굴이 보이지 않게 했지요. 장옷은 남자 두루마기와 비슷한 모양입니다. 바탕은 주로 초록색 명주였고, 소매 아래에는 흰색 옷감을, 겨드랑이와 옷고름과 깃에는 보라색 옷감을 댑니다. 쓰개치마는 보통 치마와 비슷한데 폭과 길이가 짧고, 흰 모시로 만들었습니다. 너울은 삿갓 테두리에 얇은 옷감을 대어 허리까지 드리우는 것입니다. 두꺼운 옷감을 대고 눈앞에만 얇은 옷감을 대어 밖을 볼 수 있게 합니다. 양반 규수들은 이 규범을 엄격하게 지켜야 했습니다. 이 얼굴 가리개들은 여성들을 옥죄는 도구지요. 이는 성리학이 맹위를 떨치던 조선 시대 가부장제의 흔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