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전통 가구 가운데 궤(櫃)라는 것이 있습니다. 궤는 궤독, 초궤라고도 하는데 크기에 따라 큰 것은 궤, 작은 것은 갑(匣)이라고도 부릅니다. 곡식, 제사도구, 책 같은 것들을 보관할 수 있는 네모난 가구지요. 궤는 크기에 따라 30cm 정도의 작은 것부터 2~3m 정도의 큰 것까지 다양합니다. 천판(天板, 가구에서 가장 윗면을 막아주며 마감하는 판)의 반을 문으로 사용하여 ‘윗닫이’라고도 부르는데, 보관하는 물건의 무게를 견디도록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위로 문을 열어야 하기 때문에 높이가 낮고 장식이 비교적 소박한 것이 특징입니다. 앞부분을 여는 반닫이와 다르게 앞면에 다양한 쇠장식을 하지 않으며, 이음 부분에 길게 붙는 감잡이나 문이 열리는 부분의 경첩, 자물쇠 앞바탕 장식 정도로 반드시 필요한 부분에만 금속장식을 붙이지요. 자물쇠가 달리는 바탕의 장식을 앞바탕장식이라고 부르는데 자물쇠를 열고 닫을 때 나무를 상하지 않도록 하는 것으로 자물쇠 크기보다 크게 만듭니다. 어떤 궤는 이 앞바탕 장식을 화려한 꽃문양이나 뚫새김(투각)을 해서 꾸미기도 합니다.
≪삼국유사≫에 탈해왕이 길이 20척, 너비 13척인 궤에서 나왔고,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金閼智)도 금궤에서 나왔다는 기록으로 보아 궤는 오래전부터 써온 가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궤 속에 녹슨 돈은 똥도 못 산다”는 말이 있는데 돈은 쓸 때 써야 그 값어치를 다 하게 됨을 뜻합니다.
이제 궤는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지만 우리 겨레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는 소중한 유물입니다. 벌써 한 해를 마무리하는 때가 왔습니다. 올 한 해 동안 나는 궤 안에 무얼 담았는지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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