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으로 먹어 본다는 것이 한 그릇 두 그릇 먹기 시작을 하면 누구나 자미를 드려서 집에 갈 로자 돈이나 자긔 마누라의 치마감 사줄 돈이라도 안이 사먹고는 견듸지 못할 것이다. 갑이 눅은 것도 눅은 것이어니와 맛으로던지 영양으로던지 상당한 가치가 잇는 것이다. 自來(자래)로 서울의 폐병(肺病)쟁이와 중병 알코 난 사람들이 이것을 먹고 소복(蘇復, 원기 회복)하는 것은 물론이고 근래(近來)에 소위 신식결혼을 하얏다는 하이카라 청년들도 이 설넝탕이 안이면 조석(朝夕, 아침저녁)을 굴물 지경이다.”
일제강점기의 잡지 ≪별건곤≫ 23호 <경성명물집(京城名物集)>에 나오는 설렁탕 이야기입니다. 일제강점기 서울에서는 이렇게 설렁탕이 큰 인기를 얻고 있었지요. 설렁탕을 사전에서는 “소의 여러 부위를 함께 넣고 푹 끓인 국, 또는 그 국에 밥을 만 음식”이라고 짧게 풀이하고 있습니다. 덧붙인다면 소머리·사골·도가니, 그 밖에 뼈·사태고기·양지머리·내장 따위를 재료로 써서 10여 시간 푹 고면 뽀얀 우유빛 국물이 군침을 자아내는 음식이라 설명하고 있습니다. 살코기만을 넣고 끓인 국과는 달리 깊고 진한 맛이 특징입니다.
사전적인 풀이와 달리 설렁탕은 조선 시대에 임금이 직접 농사가 잘되기를 직접 빌던 제단인 선농단(先農壇)에서 행사 뒤 만든 국밥을 선농탕이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다른 이야기로는 국물을 오랫동안 ‘설렁설렁’ 끓인 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지요. 참고로 설렁탕과 곰탕은 뼈를 고아서 육수를 만드는 음식이고, 꼬리곰탕과 도가니탕은 사골국물에 꼬리를 넣고 우려낸 것이며, 갈비탕은 뼈를 우려낸 농도가 적은 맑은 국물로 만든 탕을 말합니다. 서울 제기동의 선농단은 2001년 12월 29일 사적 43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선농제향보존회에서 해마다 선농제를 지낸 뒤 참석한 사람들에게 설렁탕을 한 그릇씩 대접한다는군요. 2011년에는 4월 30일 제향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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