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일곱째 입하(立夏)입니다. 입하는 '여름(夏)에 든다(入)'는 뜻으로 푸르름이 온통 뫼(산)와 가람(강)을 뒤덮어 여름이 다가옴을 알리는 절기지요. 입하는 ‘보리가 익을 무렵의 서늘한 날씨’라는 뜻으로 맥량(麥凉), 맥추(麥秋)라고도 하며, ‘초여름’이란 뜻으로 맹하(孟夏), 초하(初夏), 괴하(槐夏), 유하(維夏)라고도 부릅니다. 이맘때는 곡우에 마련한 못자리도 자리를 잡아 농사일이 좀 더 바빠지며, 세시풍습의 하나로 쑥버무리를 시절음식으로 만들어 먹기도 합니다.
입하에 산과 들에 가보면 하얗고 탐스런 이팝나무를 봅니다. 이팝나무란 이름은 입하 무렵 꽃이 피기 때문에 ‘입하목(立夏木)’이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또 이밥은 하얀 쌀밥을 뜻하는데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가 '정전제(井田制)'를 시행하여 일반 백성들도 쌀밥을 먹게 되었고, 그래서 백성들이 이 쌀밥을 '이성계가 준 밥'이란 뜻으로 '이밥'이라 불렀는데 이것이 변하여 이팝나무가 되었다고도 하지요. 실제 흐드러진 이팝나무 꽃을 보면 마치 쌀밥(이밥)을 고봉으로 담아 놓은 것 같은 모양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예전 가난한 백성은 그저 밥이나 배부르게 먹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논에서 종일 허리를 제대로 펼 틈도 없이 일하다가 뱃가죽과 등짝이 서로 들러붙는 듯한 허기에 눈에 들어오는 이팝나무꽃이 마치 흰 쌀밥으로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옛 사람들은 이팝나무 꽃이 한꺼번에 피어 고봉밥 모양을 이루면 그해 풍년이 들고, 듬성듬성 피어 신통찮으면 흉년이 들 조짐이라고 여겼습니다. 나들이 가면서 이팝나무가 보이면 고봉밥 모양인지 아닌지 한번 볼까요?
|
|
|
|
| |
|
|
|
|
|
|
옛 얼레빗 (2012-05-07) |
|
2301. 봄날, 풀피리 소리로 날아서 그대에게 가렵니다
| |
|
|
|
| |
|
|
|
|
|
|
. |
|
연산실록 11년(1505) 2월 20일 기록에 보면 “서울 밖의 운평(악기를 다루는 기생) 가운데 풀피리를 잘 불고 예쁜데도 숨겨진 자가 있을 것이니, 널리 다니면서 찾게 하라.”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원문에서는 “초적(草笛)”이라고 쓰였는데 “초금(草琴)”이라고도 했지요. 나뭇잎이나 나무껍질, 풀잎 따위를 입술로 불어서 소리는 내는 악기가 바로 풀피리입니다. 풀피리 연주자 가운데 나라에서 지정한 중요무형문화재는 없고, 현재 지방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데 보유자는 서울(제24호)의 박찬범 선생과 경기도(제38호)의 오세철 선생입니다.
조선 성종 때 성현(成俔) 등이 의궤(儀軌)와 악보를 정리하여 편찬한 음악서 《악학궤범》에 "예전에는 초적에 복숭아나무 껍질을 만 것이 있었다. 예전 사람이 이르기를 잎사귀를 입에 물고 휘파람을 부는데 그 소리가 맑게 진동하며, 귤과 유자의 잎사귀가 더욱 좋다 하였고, 또 갈대 잎사귀를 말아서 초적을 만드는 데 그 모양이 그와 같다 하였다. 지금은 벚나무 껍질을 즐겨 쓴다. 대개 나뭇잎이 단단하고 두꺼우면 다 쓸 수 있다. 그저 가만히 또는 세게 불어서 높고 낮은음을 만들고 이 사이로 혀끝을 움직여 악조를 맞춘다. 초적을 배우는 데는 선생의 가르침이 필요 없고 악절만 알면 다 할 수 있다."라는 글이 보입니다.
영조 20년(1744년)에 쓰인 진연의궤(進宴儀軌)에 따르면 초적 악사 강상문이 궁중 잔치에 참석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일제강점기 때는 강춘섭 명인이 초적 시나위와 초적 굿거리를 녹음한 유성기 음반도 남아있습니다. “듣고 계시는지요? 봄이 지는 문간에 잡풀만 수북하게 자라서 길이 보이지 않으니 나는 풀피리 소리로 날아서 그대에게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시인 풍경소리님이 블로그에 올린 아름다운 시입니다. 봄이 다 가기 전 풀피리 한 번 불어보시겠어요?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