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의 뜻을 아느냐?” 성종임금이 지방 수령으로 나갈 신하에게 묻습니다. 이에 안다고 답하자 성종은 “그럼 그대로 행하라. 조정의 녹을 먹는 벼슬아치라면 당연히 백성을 어여삐 여길 일이다. 수령이 되어서 백성의 재물을 빼앗는 것은 애비가 자식의 것을 강도질하는 것과 같다.”라고 다짐하게 합니다. 이 그림은 덕천군수 양관이 소임을 다하고 돌아올 때 파주 나루에서 암행어사에게 모든 짐을 뒤지게 한 것을 그린 그림입니다.
당시 힘이 있는 사람은 수령에게 뇌물을 바치고 남의 묘지를 빼앗는 일이 흔했습니다. 하지만 양관은 이때 한 푼도 받지 않고 공정한 판결을 내린 걸로 유명했지요. 그러자 묘지를 빼앗지 못한 사람은 온갖 중상모략을 하고 이것이 임금의 귀에까지 들어갔던 것입니다. 심지어 사헌부에서는 탄핵까지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임금은 양관이 모함을 받았다는 걸 알았지만 정황만으로 모른 척 할 수는 없었지요. 그래서 암행어사를 시켜 임진강 파주나루에 들어오는 양관의 보따리를 모두 뒤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역시 양관의 보따리에는 책 몇 권과 가야금 그리고 화살 등 몇 가지만 나왔고 돈이 될 만한 것은 전혀 나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에 임금은 화원을 시켜 이를 그리게 하고 용상 옆 벽에 걸어두고 아침저녁으로 스스로 새겼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지방 수령으로 나갈 신하들에게도 청렴한 수령의 표본으로 단단히 일렀던 것이지요. 요즘 어디 그런 공직자 없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