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아름다운 우리문화 산책(김영조)

간도 용정촌의 유래가 된 물 퍼올리는 ‘용두레’

튼씩이 2021. 11. 11. 12:59

간도 용정촌의 유래가 된 물 퍼올리는 ‘용두레’

 

 

옌볜延邊(연변) 출신 소설가 류원무의 책 연변취담에 보면, 일제강점기 우리 겨레가 살며 독립운동의 본거지가 되었던 중국 지린성吉林省(길림성) 동부 간도(間島) 룽징춘龍井村(용정촌)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처음 조선인 마을이 생긴 때는 평안북도와 함경북도 이재민이 옮겨와 살기 시작한 1877년이라고 하지요. 그 뒤 1886년 봄, 정준이라고 하는 조선 젊은이가 옛 우물을 발견했는데 물이 맑고 맛이 좋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우물이 깊어서 룡드레를 세우고 물을 길어 먹었습니다. 그래서 마을 이름이 룡드레촌이 되었는데, 학식께나 있다는 사람들이 상의하여 룡드레의 첫 글자인 ()’ 자에 우물 ()’를 붙여 용정촌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1934년 리기섭이라는 사람이 룡정지명기원지정천龍井地名起源之井泉이라는 빗돌을 세워 후세에 전해졌다고 하지요.

 

이 용정촌 이름의 유래가 된 룡드레, 용두레는 물이 많고 무넘이가 높지 않은 곳의 물을 퍼 올리는 도구입니다. 지방에 따라 통두레’, ‘파래’, ‘풍개라고도 부릅니다. 길이 1.5m가량 되는 통나무 앞쪽을 넓고 깊게 파고, 뒤쪽은 좁고 얕게 파낸 다음 뒤쪽에 자루를 달지요. 물이 있는 곳에 삼각대를 세우고 거기에 줄을 매고 용두레를 겁니다. 그리고 용두레를 숙여 앞부분을 물에 잠기게 한 다음 손잡이를 당겨 물을 떠서 앞으로 밀어 퍼 올리는데, 혼자서 1시간에 15~20톤의 물을 풀 수 있었습니다.

 

 

룡드레   용두레의 북쪽 사투리. 낮은 곳의 물을 높은 곳으로 퍼 올리는 데 쓰는 기구.

 

무넘이   봇물을 대기 위해 만든 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