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얼레빗) 3389. 왕세자 책봉 때 쓴 죽책문, 대나무에 글씨를 새겼다

튼씩이 2016. 9. 23. 07:33

날마다 쓰는 한국문화 편지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다른 얼레빗 모두 보기

단기 4349(2016). 9. 21,



어린 원자가 자라나서 나이가 차면 선왕의 뒤를 이을 왕세자로 책봉됩니다. 왕세자의 책봉은 신하들의 요청으로 시작되는데 보통 8살 무렵에 하게 되지요. 원자의 나이와 학문이 세자로서 손색이 없다는 점을 신하들이 임금에게 아뢰고 임금은 새 봄의 좋은 날을 가려 세자의 책례를 거행하였습니다. 책례는 원자를 세자로 책봉하는 임명서를 수여하는 것이 중심이 되었지요.

그런데 여기서 나오는 말들을 보면 책(冊) 자를 써서 책봉(冊封), 책례(冊禮)라 하고 왕세자 책봉을 준비하는 임시 기구도 “책례도감(冊禮都監)”라 했으며, 세자의 임명서는 “죽책문(竹冊文)”이라 하였지요. 이렇게 책봉은 책(冊) 자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그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임명서가 “죽책문(竹冊文)”인 것에서 따져 보아야 합니다. 요즈음 임명장은 대개 종이를 쓰지만 당시에는 대나무로 임명장을 만들었기 때문에 죽책문인 것입니다.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대나무에 글을 써 온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지요. 그러나 옛날 죽책은 대나무에 직접 붓으로 글씨를 쓴 대신 조선시대의 죽책문은 대나무에 글씨를 새겨 넣었습니다. 또 이와 달리 임금과 왕비에게 올리는 책봉 문서는 옥으로 만든 책에다 써서 “옥책문(玉冊文)”이라 하였는데, 죽책문 보다는 격이 높았음을 알 수 있지요.

-------------------------------------------------------
< 맛 있는 일본이야기 368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 《라쇼몽(羅生門)》



라쇼몽(羅生門)은 헤이안시대 헤이죠쿄(平城京)에 있던 큰 문이다. 궁성을 드나들 때 거쳐야하는 큰 문으로 나성문(羅城門)이란 한자를 썼던 것인데 훗날 나생문(羅生門)으로 바뀌었고 이 문이 유명하게 된 것은 아무래도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芥川龍之介, 1892~1927)의 단편소설 《라쇼몽(羅生門)》 덕일 것이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라쇼몽》말고도 《코》 등 많은 단편소설을 남겼는데 이들 소재는 12세기 작품인 《곤자쿠모노가타리(今昔物語集)》에서 얻고 있다. 헤이안시대에 만들어진 이 책 속에는 당시에 나돌던 1200여 가지의 설화가 들어있는데 《라쇼몽》은 이 설화집 세속부 권 29화의 이야기를 소재로 쓴 것이다.

헤이안시대(平安時代, 794~1185)는 왕조의 부귀영화가 절정에 달하던 시대로 말기에 이르면 잦은 화재와 흉년, 굶주림 따위로 백성들의 곤궁한 삶이 드러나는데 설화집의 나성문(羅城門) 이야기에서 그것을 엿볼 수 있다. 때는 헤이안 말기, 한 사내가 나성문을 어슬렁거리다 2층 누각으로 올라간다. 2층에 올라가보니 한 노파가 죽은 여자의 시체에서 머리카락을 뜯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노파는 이 머리카락으로 가발을 만들어 팔아 먹거리를 마련해야 할 만큼 곤궁한 지경이었고, 사내 역시 강도짓이라도 해서 입에 풀칠을 해야 할 상황이다.

곤경에 처했을 때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일이 있다. 어쩌면 노파의 행위도 그런 일 가운데 하나일지 모른다. 사내 역시 살아가기 위해서는 노파가 입고 있는 때에 찌든 옷이라도 벗겨야 할 판이다. 이처럼 당시 백성들의 비참한 삶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장면을 보면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라쇼몽》을 창작했다. 1915년의 일이다.

《라쇼몽》은 헤이안시대로부터 무려 약 800년이 지난 시점에 쓴 이야기지만 지금도 여전히 당시와 같은 <시대 상황>은 존재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품은 지금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이해하고 공감이 가기에 생명력이 질긴지도 모른다. 소설 《라쇼몽》은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에 의해 같은 이름의 영화 <라쇼몽>으로 만들어졌으나 내용은 원작 《라쇼몽》과 〈덤불 속〉이라는 소설 두 개를 합한 것으로 원작 《라쇼몽》과는 약간 다르다.

어쨌거나 고전에서 소재를 얻어 다양한 인간 군상에 관한 실상을 소설화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36살의 나이로 음독자살, 삶을 마감했다.

* 일본한자는 구자체로 썼습니다.

.

.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59yoon@hanmail.net)

소장 김영조 ☎ (02) 733-5027
서울시 영등포구 영신로 32. 그린오피스텔 306호
www.koya-culture.com, pine996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