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얼레빗) 3390. 오늘은 추분, 선비는 졸 닦고 중용을 생각하고 공예

튼씩이 2016. 9. 23. 07:34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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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4349(2016). 9. 22.



낮때와 밤때가 똑 같다 하느니
오면 앗 읽고 달 돋으면 임 생각고
고요히 깊어가는 갈 선비는 졸 닦고

위 노래는 일본 교토의 한밝 김리박 선생이 쓰신 “갈 같 날”입니다. 여기서 ‘갈같날’은 추분(秋分)을 가리키는 토박이말이며, ‘앗’은 책, ‘갈’은 가을, ‘졸’은 지조(志操)를 뜻합니다. 조금 쉽게 풀어본다면 “추분은 낮과 밤이 똑 같다 하느니 / 추분 오면 책 읽고, 달 돋으면 임 생각나는 때라 / 고요히 깊어가는 가을, 선비는 지조를 닦고 있어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추분은 낮과 밤이 같다고 하는데 춘분과 함께 바로 “더함도 덜함도 없는 날”이어서 우리는 이때 중용(中庸)을 생각해봐야만 합니다. 세상일이란 너무 앞서가도 뒤쳐져도 안 되며, 적절한 때와 적절한 자리를 찾을 줄 아는 것이 슬기로운 삶임을 추분은 깨우쳐 줍니다. 더불어 가을 벌판 고개 숙이는 벼가 보여주는 겸손, 그리고 한여름 강렬한 햇빛과 천둥과 비바람을 견디어낸 벼의 향[香]를 생각해볼 때입니다.

옛 얼레빗 (2012-09-18)



2380.마음의 때를 씻어주는 표충사 "청동은입사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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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기술 관련 중요무형문화재로는 조각장, 장도장, 두석장, 백동연죽장, 유기장, 금속활자장, 주철장과 함께 “입사장(入絲匠)”이란 것도 있습니다. 입사장은 금속그릇의 표면을 작은 정으로 쪼아 다른 금속을 끼워 넣거나 덧씌워 무늬를 놓는 일을 하는 장인을 말하며 중요무형문화재 제78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주로 놋이나 쇠로 만든 그릇에 은입사(銀入絲)를 하지만 금입사(金入絲)도 있습니다.

은입사로 만든 유형문화재 가운데 경상남도 밀양 표충사에 있는 고려시대의 향로인 국보 제75호 <표충사청동함은향완>이 있습니다. 향로에는 57자의 은입사 글자가 있는데, 그 내용으로 미루어 우리나라 향로로서는 가장 오래된 1177년(명종 7)에 만든 것임을 알 수 있지요. 이름에 “함은향완”이라는 것은 은입사라는 뜻이며 곧 은상감(銀象嵌)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향로 전체에 무늬가 오목새김(음각)되어 있는데, 6개의 동그라미 안에 '범(梵)' 자를 은입사하였으며, 그 사이에 구름무늬가 장식되어 있지요. 받침에는 구름과 용무늬를 장식하였는데, 굵은 선과 가는 선을 적절히 배합하여 능숙하게 표현된 용의 모습에서 고려시대의 뛰어난 은입사기법을 볼 수 있습니다. 절에서는 향로로 향을 피움으로써 마음의 때를 씻어준다고 하지요? 맑고 향기로운 향을 곁에 두고 지내보는 것도 좋을 일입니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소장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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