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아름다운 우리문화 산책(김영조) 142

평생 하늘에 부끄럼 없자고 했네 – 이현일, 「병중서회」

평생 하늘에 부끄럼 없자고 했네 – 이현일, 「병중서회」 덧없는 인간세상 草草人間世 어느덧 나이 팔십이라 居年八十年 평생에 한 일 무엇이뇨 生平何所事 하늘에 부끄럼 없고자 한 것이네 要不愧皇天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이 쓴 「病中書懷(병중서회, 병중에 회포를 적다)」라는 한시입니다. 1704년 이현일이 세상을 뜨기 두 달 전에 지은 것으로, 글쓰기를 마감한 절필시(絶筆詩)지요. 그는 죽음이 가까워오자 평생을 뒤돌아보면서 ‘하늘에 부끄럼 없고자 최선을 다했음’을 고백합니다. 높은 벼슬이나 재산을 탐하지 않았던 이현일의 인품이 그대로 드러난 시입니다. 이현일이 태어나기 전 임진왜란 때, 두사충(杜師忠)이라는 중국인이 조선에 왔다가 그의 집을 보고 “자색 기운이 1장이나 뻗어 있으니 저 집에 틀림없이 뛰어..

얼음 먹는 벼슬아치, 얼음 뜨던 백성 몰라 – 김창협, 「착빙행」

얼음 먹는 벼슬아치, 얼음 뜨던 백성 몰라 – 김창협, 「착빙행」 고대광실 오뉴월 푹푹 찌는 여름날에 高堂六月盛炎蒸 여인의 섬섬옥수 맑은 얼음 내어오네 美人素手傳淸氷 칼로 그 얼음 깨 자리에 두루 돌리니 鸞刀擊碎四座徧 멀건 대낮에 하얀 안개가 피어나네 空裏白日流素霰 왁자지껄 떠드는 이들 더위를 모르니 滿堂歡樂不知暑 얼음 뜨는 그 고생을 그 누가 알아주리 誰言鑿氷此勞苦 그대는 못 보았나? 君不見 길가에 더위 먹고 죽어 뒹구는 백성들이 道傍暍死民 지난겨울 강 위에서 얼음 뜨던 자들이란 걸 多是江中鑿氷人 조선 후기 문신 김창협(金昌協)의 「착빙행(鑿氷行, 얼음 뜨러 가는 길)」입니다. 냉장고가 없던 조선시대에는 얼음으로 음식이 상하는 것을 막았지요. 한겨울 장빙군(藏氷軍)이 한강에서 얼음을 떠 동빙고와 서빙고..

고려시대 기생 동인홍의 절개 – 동인홍, 「자서」

고려시대 기생 동인홍의 절개 – 동인홍, 「자서」 기생집의 여인과 양갓집 여인에게 娼女女良家 그 마음 어찌 다른지 물어볼거나 其心問幾何 가련치만, 지켜가는 이내 절개는 可憐柏舟節 하늘에 맹세코 죽는대도 딴 뜻 없다네 自誓死靡他 고려시대 팽원(彭原, 지금의 평안남도 안주)의 기생 동인홍(動人紅)이 지은 「자서(自敍)」입니다. 비록 남들이 천하게 보는 기생이지만 절개를 지키려는 마음은 양갓집 여인네와 다름이 없다는 뜻을 “하늘에 맹세코 죽는대도 딴 뜻 없다네”라는 구절이 잘 드러내고 있지요. 정절을 지키려는 마음에는 신분의 차이는 없는데도, 세상은 그렇게 봐주지 않습니다. 여기서 ‘동인홍(動人紅)’이라는 이름은 사람의 얼굴을 벌겋게 만든다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허튼짓을 하는 엉뚱한 사내들의 얼굴을 부끄럽게..

고운 향기 거두어 이끼 속에 감추다 – 정온, 「절매식호중」

고운 향기 거두어 이끼 속에 감추다 – 정온, 「절매식호중」 매화야 가지 꺾였다고 상심치 말아라 寒梅莫恨短枝嶊 나도 흘러흘러 바다를 건너 왔단다 我亦飄飄越海來 깨끗한 건 예로부터 꺾인 일 많았으니 皎潔從前多見折 고운 향기 거두어 이끼 속에 감춰두렴 只收香艶隱蒼苔 조선 중기의 문신인 동계(桐溪) 정온(鄭蘊)이 지은 한시 「절매식호중(折梅植壺中, 매화가지 하나 꺾어 병에 꽃고)」입니다. 정온은 부사직(副司直)으로 있던 1614년 영창대군이 죽었을 때, 그의 처형이 부당하며 영창대군을 죽인 강화부사 정항(鄭沆)을 참수(斬首)해야 한다고 상소를 올렸지요. 그러자 광해군은 크게 분노했고, 결국 정온은 제주도의 대정현(大靜縣)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고 말았습니다. 반정으로 인조가 보위에 오른 뒤 사자(使者)가 정온..

해를 가린 뜬구름 쓸어갈 싹쓸바람은? - 권근, 「중추」

해를 가린 뜬구름 쓸어갈 싹쓸바람은? - 권근, 「중추」 가을바람과 옥 같은 이슬이 은하를 씻은 듯 秋風玉露洗銀河 달빛은 예부터 이런 밤이 좋았다 月色由來此夜多 슬프게도 뜬구름이 해를 가려버리니 惆悵浮雲能蔽日 술잔을 멈추고 한 번 묻노니, 어쩌자는 것인가 停杯一問欲如何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자 학자인 양촌(陽村) 권근(權近)의 한시 「중추(仲秋)」입니다. 권근은 조선 개국 후 ‘사병 폐지’를 주장하여 왕권 확립에 큰 공을 세웠습니다. 대사성, 세자좌빈객 등을 역임하고 길창부원군에 봉해졌지요. 문장에 뛰어났고, 경학에 밝았으며, 저서에는 『입학도설(入學圖說)』, 『양촌집(陽村集)』, 『사서오경구결(四書五經口訣)』, 『동현사략(東賢事略)』 따위가 있습니다. 시에서는 슬프게도 뜬구름이 해를 가려버립니다. ..

누에 치는 아낙은 비단옷 입지 못하니 – 이산해, 「잠부」

누에 치는 아낙은 비단옷 입지 못하니 – 이산해, 「잠부」 누에를 친들 무슨 이익 있으랴 養蠶有何利 자기 몸엔 비단옷 입지 못하니 不見身上衣 가엾어라 저 이웃집 아낙은 堪憐隣舍女 날마다 뽕잎 따서 돌아오는구나 日日摘桑歸 조선 선조 대에 영의정을 지낸 문신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가 쓴 「잠부(蠶婦)」 곧 ‘누에 치는 아낙’이라는 제목의 한시입니다.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사람에게 처음으로 누에 치는 법을 가르친 서릉씨(西陵氏)에게 제사를 지내고, 제사 뒤에는 왕비가 직접 뽕잎을 따는 모범을 보였습니다. 이러한 국가의례를 ‘선잠제(先蠶祭)’ 또는 ‘친잠례(親蠶禮)’라 불렀지요. 그만큼 누에를 쳐서 실을 뽑고 옷감(비단)을 짜는 일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옷감을 짜는 여성들은 정작 비단옷..

띠풀 집에 밝은 달 맑은 바람이 벗이어라 – 길재, 「한거」

띠풀 집에 밝은 달 맑은 바람이 벗이어라 – 길재, 「한거」 시냇가 띠풀 집에 한가히 지내노라니 臨溪茅屋獨閑居 달은 밝고 바람은 맑아 흥취가 가득하네 月白風淸興有餘 손님이 오지 않으니 산새가 찾아와 지저귀는데 外客不來山鳥語 대나무 밭에 평상을 옮겨놓고 누어서 책을 보네 移床竹塢臥看書 고려 말 충신인 야은(冶隱) 길재(吉再)의 한시 「한거(閒居, 한가히 지내다)」입니다. 그는 새 왕조인 조선에 벼슬하지 않고 금오산(金烏山)에 은둔하여 후학 양성에만 몰두했지요. 고려 조정에서 벼슬을 했던 그는 조선 왕조에서 부귀공명을 누리는 것이 욕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길재는 시냇가에 띠풀로 이은 집을 짓고 조용히 삽니다. 이 집에는 손님이 찾아오지 않지만 밝은 달과 맑은 바람이 벗이 되지요. 그뿐만 아니라 산새까지 ..

마음을 비우고 솔바람 소리 들을까? - 홍세태, 「우음」

마음을 비우고 솔바람 소리 들을까? - 홍세태, 「우음」 시비를 겪고 나서 몸은 지쳤고 是非閱來身倦 영욕을 버린 뒤라 마음은 비었다 榮辱遣後心空 사람 없는 맑은 밤 문 닫고 누우니 閉戶無人淸夜 들려오는 저 시냇가 솔바람 소리 臥聽溪上松風 조선 후기 시인 홍세태(洪世泰)의 한시 「우음(偶吟, 그냥 한번 읊어보다)」입니다. 홍세태는 5세에 책을 읽을 줄 알았고, 7∼8세에는 이미 글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무관이었지만 어머니가 종이었기 때문에 그도 종모법(從母法)에 따라 종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똑똑한 홍세태를 본 사람들이 돈을 모아 속량(贖良)시켜 주었다고 합니다. 홍세태는 속량만 되었지 중인 신분이었기 때문에 과거를 보고 벼슬에 나갈 수가 없었지요. 어릴 때 이미 자신의 처지를 알았던 홍세태..

소 타는 것이 이리 즐거울 줄이야 – 양팽손, 「우음」

소 타는 것이 이리 즐거울 줄이야 – 양팽손, 「우음」 소 타는 것이 이리 즐거울 줄은 몰랐는데 不識騎牛好 나 다닐 말이 없는 까닭에 이제야 알았네 今因無馬知 해거름 저녁 무렵 풀 향기 가득한 들길 夕陽芳草路 나른한 봄날 저무는 해도 함께 느릿느릿 春日共遲遲 조선 중기의 문신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이 지은 「우음(偶吟, 그냥 한번 읊어보다)」이라는 한시입니다.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한 뒤 유유자적한 모습을 묘사한 전원시지요. 저 멀리 마을에서는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땅거미를 타고 풀 향기가 솔솔 올라오는 들길을 소를 타고 가로지르는 모습은 마치 한 폭의 신선도 같은 느낌을 줍니다. 양팽손은 조광조(趙光祖) 등과 함께 1510년 생원시에 합격했습니다. 1519년 교리(校理) 자리에 있을..

시내에 물 불고 봄빛이 사립문에 가득하네 – 백광훈, 「계당우후」

시내에 물 불고 봄빛이 사립문에 가득하네 – 백광훈, 「계당우후」 어젯밤 산속에 비가 내렸으니 昨夜山中雨 앞 시내 지금 물이 불었으리라 前溪水政肥 대숲 집 그윽한 봄꿈 깨어나니 竹堂幽夢罷 봄빛이 사립문에 가득하구나 春色滿紫扉 선조 때 삼당시인(三唐詩人)으로 이름났던 백광훈(白光勳)의 「계당우후(溪堂雨後)」입니다. 산에 봄비가 와서 물이 불어났고, 비가 그치자 사립문 앞에 봄빛이 완연하다는 내용이지요. 이렇게 이른 봄을 노래한 한시로 윤휴(尹鑴)의 「만흥(漫興)」도 있습니다. 말을 타고 유유히 가다서다 하노라니 驅馬悠悠行不行 돌다리 남쪽 가에 작은 시내 맑기도 하다 石橋南畔小溪淸 그대에게 묻노니 봄 구경 언제가 좋은가 問君何處尋春好 꽃은 피지 않고 풀이 돋으려 할 때이지 花未開時草欲生 말을 타고 맑은 시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