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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싱크홀’의 제목이 ‘땅꺼짐’이었다면?

외래어나 외국어를 우리말로 바꾸자는 주장에 외래어나 외국어를 우리말로 바꾸면 원래 의미가 잘 와닿지 않는다는 이유를 대는 일을 흔히 접하곤 한다. 그러나 ‘텔레비전’과 ‘전화’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전화’도 우리 고유어는 아닐 뿐만 아니라 근대 문물의 수용 과정에서 우리의 주체성이 발현된 경우도 아니므로 적당한 예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텔레폰’이 아니어서 그 의미가 잘 와닿지 않는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를 보면 외래어나 외국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순화 작업(순화 작업의 결과물인 ‘순화어’를 더 쉽게 ‘다듬은 말’이라고 하기도 한다. 즉 ‘다듬은 말’은 ‘순화어’를 ‘다듬은’ 말이기도 하다.)은 순화어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말을 ..

일본과 '깐부' 맺은 영어 남용

전 세계 시청률 1위를 차지한 ‘오징어 게임’에서 나온 ‘깐부’라는 단어가 화제다. 깐부는 딱지치기, 구슬치기를 할 때 한 편이나 동지를 뜻하는 은어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근 만난 여러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추정해 보면 일본어 ‘가부시키’(かぶしき·株式)의 ‘가부’가 변한 말일 가능성이 크다. ‘가부’는 과거 일본의 도매상인들 동업조합을 부르는 말이었고, 투자한 지분만큼 얻는 권리를 ‘가부시키’라고 칭했다. ‘가부’는 일종의 경제공동체를 뜻하는 말이다. 여러 지역에서 어릴 적 “가부 맺자”, “가부하자”, “가부 걸자”고 썼던 일본어가 세월이 흘러 ‘깐부’라는 말로 변해서 다시 등장했다는 얘기다. 말소리의 유사성으로 볼 때 설득력이 있다. 비탈을 뜻하는 고바이가 ‘코우바이(勾配·こうばい)’라는 일본..

범람하는 ‘챌린지’란 말, 그러나 ‘챌린지’는 틀린 ‘일본식 영어’

범람하는 ‘챌린지’란 말, 그러나 ‘챌린지’는 틀린 ‘일본식 영어’ - ‘일본식 영어 베끼기’를 그만둬야 할 이유 공공기관들의 부끄러운 ‘챌린지’ 홍보 우리 주변에서 ‘챌린지’라는 말을 최근 들어 부쩍 많이 사용하고 있다. 특히 전국 지자체들이 앞다퉈 각종 행사에 ‘챌린지’란 말을 붙여 홍보에 나서고 있다. 창녕군은 오는 6일부터 30일까지 25일간 모바일 걷기 앱 워크온을 활용해 ‘책 읽는 창녕, 독서하는 군민’ 운동 활성화를 위한 걷기 챌린지를 운영한다고 밝혔다(2021년 9월 3일). 그림 1. 걷기 챌린지 홍보물 (출처: 창녕군청) 경기도의회 의장이 3일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인권보호와 안전보장을 촉구하는 ‘세이브 아프간 위민(Save Afghan Women)’ 챌린지에 동참했다(2021년 9월 6..

자가용 대신 메타버스 타고 오는 의사 선생님

#1 백두군 군청 대회의실에 군수를 비롯한 과장급 이상 간부들이 모였다. 곧이어 ‘백두군 웰빙시티 중장기 마스터플랜 수립 용역 최종 브리핑’이 있을 예정이다. 보고서 주요 내용은 ‘백두군 웰빙시티 비전, 목표, 중장기 로드맵’이고 용역 수행 기관은 ㈜*** 테크놀러지스다. 화려한 컬러 인쇄로 80쪽에 달하는 보고서는 그 색깔만큼이나 외국어 일색인 전문용어와 기술용어가 현란하게 채우고 있다. 용역 예산이 억 단위라서 그런지 ‘백두군 복지도시 중장기 기본계획 수립 용역 최종 보고회’와는 차원이 다르다. 잠시 후 회의실 불이 꺼지자 빔 프로젝터로 발사한 파워포인트 문서가 정면에 뜨고, 용역회사 대표가 마치 훈련된 조교처럼 빠른 말투로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한다. 시작하는 문장에 외국어가 벌써 3개지만 나 역시 저..

길거리가 어지럽다

간판은 왜 달까? 비싼 돈을 들여 다는 것인 만큼 다는 효과를 기대할 것이다. 서울 시내 거리에 나가면 수많은 간판이 달려있다. 우리말글 문제를 떠나서 저 간판은 제구실을 하고 있을까? 상표를 다루는 변리사로서 길거리에 있는 간판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길거리에 ‘CHANEL’이라 적힌 간판이 있다. 이걸 어떻게 소리 낼까? 영어로 공부한 사람은 ‘채널’이라 읽을 텐데, 실제는 ‘샤넬’이라 한다. 프랑스 말이기 때문이다. ‘RAISON’이란 이름을 단 담배가 있다. 여러분은 어떻게 읽는지 궁금하다. 내가 담배를 피울 때 ‘레이슨’ 달라고 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레종이라 부른단다. 담뱃갑 어디에도 담배 이름이 그렇다고 표기하지 않아 더더욱 고약하다. 길거리에 나가보면 여기가 한글을 쓰는 대한민국 서..

웰빙과 힐링을 빼니 치유가 보인다

우리말도 그렇지만, 영어의 말뿌리(어원)를 알면 그 낱말의 뜻을 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다. 영어 ‘culture’를 받아들이면서 한자권에서는 ‘문화(文化)’라고 번역했다.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일정한 목적을 실현하고자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하는 행동 양식 등을 문화라고 쓴 것이다. ‘농업’이라고 번역하는 ‘agriculture’의 말뿌리는 땅에서(agri)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하는 일(culture)에서 왔다. 예전에는 모여 사는 집단 사이에 교류가 없었기 때문에, 이 동네에서 농사짓는 방식과 저 동네에서 농사짓는 방식이 서로 달랐다. 그렇게 서로 다른 농사짓는 방식이 바로 영어로 ‘agriculture’이다. ‘culture’를 받아들이면서 ‘문화’라는 멋없는 낱말 말고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