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책을 읽자 419

나라말이 사라진 날 - 정재환

'우리말글을 지키기 위한 조선어학회의 말모이 투쟁사'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나라를 잃으면서 우리말과 글도 함께 잃어 버린 시절에 우리말글을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싸운 선조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제의 눈을 피하기 위해 학술단체로 등록하고, 자칫 친일파라는 누명을 쓸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도 오직 우리말글을 지키기 위한 노력들에 마음이 아파오면서, 현재 우리는 우리의 글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기는 하는건지 생각해 보면 아니라고 하는 편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 우리의 글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 최일선에서 노력해야 할 방송에서조차도 틀린 용어나 정제되지 않은 외래어를 쓰는 것부터 시작해 기자라는 사람들도 발음을 틀리고 문장에 맞지 않는 단어를 쓰는 모습에 안타까울 따름이다. 해방이 되었지만 남과 북으로..

악의 - 히가시노 게이고

인기 소설가 히다카 구니히코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사체로 발견된다. 후두부에는 둔기로 맞은 흔적이 있고, 전화코드가 그의 목을 감고 있었다. 사체를 발견한 사람은 히다카의 젊은 아내와, 친구이자 아동문학작가인 노노구치 오사무. 만날 약속을 하고 찾아온 노노구치가 사건을 담당하게 된 사람은 한때 노노구치와 과거에 같은 직장에서 근무한 인연이 있는 가가 교이치로 형사. 그는 노노구치가 사건에 관한 수기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 수기를 토대로 사건을 수사하던 중 노노구치의 알리바이가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히다카를 살해한 범인은 바로 노노구치였던 것이다. 그러나 노노구치는 체포된 뒤에도 작가로 데뷔하는 데 도움을 준 친구를 왜 살해했는지에 대해서는 침묵만 지킨다. 그의 석연치 않은 태도에 가가 형..

두 얼굴의 법원 - 권석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사건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재판 지연은 ‘양승태 코트 사법농단’이라는 거대한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2012년 대법원에서 역사적인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이 나왔다. 하지만 2013년 일본 전범기업의 재상고가 접수된 뒤 2018년 확정 판결이 나오기까지 사건이 5년간 대법원에 묶여 있는 사이 원고 9명 중 8명이 숨졌다. 베일이 벗겨진 순간 적나라한 내막이 드러났다. 법원행정처에서 판사들이 법관의 양심을 저버린 채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건들을 만드는 사이 행정처 간부들과 청와대, 정부 사이에는 은밀한 만남과 전화통화들이 이어졌다. 그 결과 전직 대법원장이 구속돼 재판을 받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법원에는 대체 무슨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베테랑 기자 권석천의 책 『두 얼굴..

파친코(전 2권) - 이민진

발버둥 쳐도 헤어날 수 없는 ‘인생’이라는 이름의 굴레 『파친코』 속의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각자의 한계와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고된 삶을 이어나간다. 삶은 모두에게나 고통이지만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들에게는 더더욱 가혹했다. 물론 그들은 조선에서도 평탄한 삶을 보내지는 못했다. 그들은 그저 자식만큼은 자신들보다 나은 대우를 받으며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보통 사람’들이었지만, 시대는 그들의 평범한 소원을 들어줄 만큼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다. 가난한 집의 막내딸 양진은 돈을 받고 언청이에 절름발이인 훈이와 결혼한다. “여자의 인생은 고생길”이라는 말을 반복하면서도 그러한 인생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양진은 남편 훈이와 함께 하숙집을 운영해나가며 불평 한마디 하지 않는다. 그녀는 온갖 궂은..

미생14 - 윤태호

온길 인터내셔널이라는 중소기업을 차린 오상식의 제안으로 원 인터내셔널 계약직을 끝내고 온길에서 근무하는 장그래와 사장 김부련, 전무 김동수, 과장 김동식, 경리 조아영이 핵심인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14권에서는 송일무역 사장이 쓰러지면서 온길이 송일무역을 합병하는 과정이 주 내용으로, 아들 한그루도 온길로 입사하게 된다. 프리퀄에서는 오상식이 사원 시절 상사의 죽음을 통해 비정하고 처절한 사회에서 미생으로서 버텨온 사연을 통해 빨간 눈이 된 사연이 펼쳐진다.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 - 기욤 뮈소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은 네이선이 절필을 선언한 1998년부터 베르뇌유 일가족이 살해당한 2000년까지의 과거 이야기, 2018년 현재 보몽 섬의 서점에서 점원으로 일하게 된 라파엘과 20년 전 사건의 비밀을 추적하는 마틸드의 이야기가 서로 교차하며 전개된다. 하와이에서 휴가를 즐기던 연인들이 카메라를 바다에 빠뜨리고, 15년 동안 무려 1만 킬로 가까이 표류하다 타이베이 바이샤완 해변에서 조깅을 하던 미국인 여성사업가에게 발견되고, 그녀가 카메라를 뉴욕 행 기내에 두고 내리고, JFK공항 분실물센터에 보관되었다가 스코츠보로의 수하물센터로 이동하고, 카메라를 구입한 미국 남자가 메모리 칩을 복원해 컴퓨터에 연결한 결과 안에 들어 있던 다수의 사진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 지난한 과정은 ‘필연이란 우연을..

직지(1, 2권) - 김진명

직지는 고려 말인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된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으로, 정식 명칭은 ‘백운화상초록 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 佛祖直指心體要節)’이며, 상·하 2권으로 인쇄되었다. 현재 하권만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서양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구텐베르크의 ‘42행성서’보다 78년 앞섰다. 그러나, 프랑스는 약탈 문화재라고 인정한 외규장각 도서와 달리 직지는 개인이 정당하게 구입한 문화재이므로 반환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작가의 말에서(6~7쪽) 최근 눈을 번쩍 뜨게 만드는 주장과 증거들이 잇달아 제기 되었는 바, 이 지식들의 포커스는 직지가 구텐베르크에게 전파되었다는 사실에 맞춰진다. 이러한 문제 제기 중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은 최근 떠오르고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