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자 2096

우리말을 여행하다 - 한글가온길 편

빼곡한 건물 숲과 그 사이를 바삐 오가는 회사원들의 모습이 날마다 펼쳐지는 서울 세종대로. 이 분주한 거리에 이야기보따리가 샘물처럼 곳곳에 숨어 있는 길이 있다. 바로 ‘한글가온길’이다. 한글의 역사와 발자취를 따라가 볼 수 있는 이 길을 한글학자 김슬옹 박사와 함께 걸었다. ‘한글가온길’은 2013년 서울시가 한글 창제 570돌을 맞아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고자 서울 세종대로 일대에 조성했다. ‘가운데’, ‘중심’을 뜻하는 ‘가온’이라는 순우리말을 써서 한글이 우리 삶과 역사에서 중심이 되어 왔다는 뜻을 담았다.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의 동상, 주시경 선생의 집터, 한글학회 등 한글과 관련 있는 이야기들이 길을 따라 촘촘히 이어진다. 오전 10시, 김슬옹 박사와 만나기로 한 한글회관으로 향했다. 김슬옹..

‘뉴 스페이스’는 ‘민간 우주 개발’로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박보균, 이하 문체부)와 국립국어원(원장 장소원, 이하 국어원)은 ‘뉴 스페이스’를 대체할 쉬운 우리말로 ‘민간 우주 개발’을 선정했다. ‘뉴 스페이스’는 민간이 주도하는 우주 개발을 이르는 말로 정부가 주도하는 우주 개발인 ‘올드 스페이스(old space)’와 대비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문체부는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의 하나로 국어원과 함께 외국어 새말 대체어 제공 체계를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문체부와 국어원은 지난 8월 17일(수)에 열린 새말모임*을 통해 제안된 의견을 바탕으로 의미의 적절성과 활용성 등을 다각으로 검토해 ‘뉴 스페이스’의 대체어로 ‘민간 우주 개발’을 선정했다. * 새말모임: 어려운 외래 용어가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다듬은 말을..

찰나의 우리말 - 공손성이 문법성을 이길 때

그날도 심각한 표정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서 모니터를 응시하며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쓰던 원고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지우고 쓰고 지우고 쓰기를 반복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눈동자는 모니터에 꽂아 두고 손을 뻗어 전화기를 들었다. 학교 행정직원 선생님의 목소리다. 필자에게 전할 서류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그 직원 선생님은 필자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교수님, 혹시 지금 연구실에 계실까요?” 이 질문에 필자는 당황했다. 이 질문에 어떤 답을 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아서였다. 누가 연구실에 있느냐고 묻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필자에게 가져다줄 서류가 있다는 내용임을 파악한 후에는 전화에 집중을 하지 않았기에, 집중하지 않은 동안 필자가 맥락상의 주어를 놓쳤나 ..

찰나의 우리말 - 호칭의 온도

나른한 오후, 하지만 나른할 틈도 없이 연구실에 앉아서 마감에 몰린 일들을 하나하나 끝내려 애쓰고 있는데 갑자기 휴대 전화가 울린다. ‘누가 건 전화일까’ 하고 휴대 전화를 보니 반가운 분의 성함이 뜬다. 너무나 오랜만이어서 반가운 마음에 얼른 전화를 받았다. 인사를 드리며 안부를 여쭈었다. 최근에 낸 책 한 권을 그분께 보내 드리려다 밖에 비가 와서 발송을 내일로 미루고 있던 차였는데 텔레파시라도 통한 듯 전화가 온 것이다. 교수님께서는 음성 기호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 제안을 해 주시고자 전화를 주셨다. 전화해 주신 내용과 관련한 말씀을 한참 나눈 후, 반가운 마음에 이런저런 필자의 근황을 말씀을 드리게 되었다. 책을 보내 드리고자 몇 자 적어 포장을 해 두었는데 마침 전화를 해 주셔서 놀랐다는 얘기부..

아 다르고 어 다른 우리말 - 감사하다와 고맙다, 같은 듯 다른 쓰임새

‘감사하다’와 ‘고맙다’라는 말은 남의 도움이나 배려에 기쁨을 느끼거나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둘의 뜻이 아주 비슷하여 별다른 구별 없이 사용한다. 그런데 종종 ‘감사하다’와 ‘고맙다’를 두고 엉뚱한 논의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열정적인 우리말 지킴이 가운데 간혹 한자어를 배척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한자어 때문에 고유어가 위축되었다고 여기기에 ‘감사하다’를 지양하고 ‘고맙다’를 열심히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자의 유입은 우리말을 위축시키기보다 오히려 풍부하게 했다고 보는 것이 훨씬 균형 잡힌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후술하겠지만 ‘고맙다’와 ‘감사하다’의 쓰임이 완전히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감사’는 일본어에서 왔다는 잘못된 통설이 ‘감사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