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얼레빗) 3349. 오늘은 칠석, 정화수 떠놓고 식구들의 안녕을 빈다.

튼씩이 2016. 8. 9. 12:04

날마다 쓰는 한국문화 편지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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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4349(2016). 8. 9.



“밤한울 구만리엔 은하수가 흘은다오 / 구비치는 강가에는 남녀 두 별 있엇다오 / 사랑에 타는 두 별 밤과 낯을 몰으것다 / 한울이 성이 나서 별하나를 쪼치시다 / 물건너 한편바다 떠러저 사는 두 별 / 秋夜長 밤이길다 견듸기 어려워라 / 칠석날 하로만을 청드러 만나보니 / 원수의 닭의소리 지새는날 재촉하네”

위는 《삼천리》 잡지 1934년 11월호에 실린 월탄 박종화의 <견우직녀> 시입니다. 오늘은 칠월칠석인데 흔히 칠석이면 내리던 비는 오지 않고 무더위만 기승을 부립니다. 흔히 칠석 전날에 비가 내리면 견우와 직녀가 타고 갈 수레를 씻는 '세거우(洗車雨)'라고 하고, 칠석 당일에 내리면 만나서 기뻐 흘린 눈물의 비라고 하며, 다음 날 새벽에 내리면 헤어짐의 슬픔 때문에 '쇄루우(灑淚雨)'가 내린다고 합니다. 또 칠석에는 까마귀와 까치가 오작교를 만들려고 하늘로 올라갔기 때문에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지요.

칠월칠석 여인네들은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떠놓거나 우물을 퍼내어 깨끗이 한 다음 시루떡을 놓고 식구들이 병 없이 오래 살고 집안이 평안하게 해달라고 칠성신에게 빌었습니다. 또 처녀들은 견우성와 직녀성을 바라보며 바느질을 잘하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이것을 “걸교(乞巧)”라 했지요. 장독대 위에다 정화수를 떠놓은 다음 그 위에 고운 재를 평평하게 담은 쟁반을 놓고 다음날 재 위에 무엇이 지나간 흔적이 있으면 바느질 솜씨가 좋아진다고 믿었습니다. 이제 정화수를 떠놓고 빌 일은 없지만 어머니들의 그런 마음은 변치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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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속풀이 275>

연변에 울려 퍼진 경서도 민요와 판소리



지난주에는 한중학술 및 실연교류에서 중국 연변 쪽에서 발표한 종목 가운데 인상에 남는 신광호의 <압록강2천>이나 박춘희의 <비단짜는 처녀>와 <일하기도 좋고 살기좋은 나라>가 독특한 창법이나 음색, 박력적인 선율로 관객을 압도했다는 이야기, 이에 못지않게 인기를 끌었던 김순희의 <태평가>와 <해란강 전설>, 리홍관이 부른 <긴난봉가> 등 서도민요에 관한 이야기도 하였다.

연변땅에서 경기민요나 서도민요를 듣게 된 것은 1990년대 초, 전화자 교수가 한국서 유학을 한 다음, 연변에 돌아가 대학의 제자들을 지도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는 이야기, 그 결실로 교류음악회에서 북한식 노래 일변도가 아니고 서서히 남한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는 음악회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이야기, 리수련의 옥류금 독주 <도라지>는 다양한 주법으로 절찬을 받았는데, 옥류금은 연변 출신 김계옥 교수를 통해 한국에서도 종종 연주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한국측에서는 가곡, 송서 율창, 경기민요, 판소리 <흥보가>, 가야금 창작곡 <영목>, <성주풀이>를 비롯한 남도민요, 서도민요와 배뱅이굿, 창극 <뱃노래>를 열연했다는 이야기를 하였으며, 공연문화도 달라 연변에서는 아무리 흥이 나도 열연하는 사람에게 방해가 되는 이유로 박수를 치지 않는다는 이야기 등도 곁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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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제18회 한중전통음악학술 및 실연교류회의 한국 쪽에서 보여준 곡목은 성악위주였다. 제일먼저 무대에 오른 박문규 명인은 전통가곡 중에서 <편락>을 불러 선비들이 즐겨 불렀던 노래의 품위를 한껏 들어내었다. 편락(編樂)이라는 곡조의 노래말은 “나무도 바히 돌도 없는 뫼에 매게 휘쫓긴 가톨의 안과”로 시작한다. “나무도 전혀 없고 돌도 없는 산, 바로 민둥산에 매라고 하는 무서운 새에게 쫓기고 있는 가톨, 곧 꿩의 절박한 마음”이라는 뜻이다.

편락의 가락이 울려 퍼지는 동안, 객석에서는 숨을 죽이고 긴 호흡의 노래를 감상했다. 가곡은 조선조 전기의 노래로 5장 형식으로 구성되며 느짓한 박자로 여유 있게 부르는 주로 상류층 인사들이 모여 불렀던 노래이다. 이 노래가 느리고 어렵기에 조선조 후기 영조 무렵에는 보다 쉬운 시조창을 만들게 된다. 현재 연변지역에서는 가곡이나 시조와 같은 정가류의 노래가 불려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이러한 노래들도 점차 보급이 되리라 생각하고 있다.

다음 종목은 이기옥과 김인숙의 송서 율창 중 <등왕각서>였다. 송서란 한 마디로 <글 읽기>다. 입으로 소리를 내어 읽되 밋밋하게 글자만을 읽어나가지 않고, 고저와 강약, 그리고 길고 짧게 시가(時價)를 구별하면서 글의 내용을 노래하듯, 음악적으로 구성지게 표현하는 성악장르이다.

일반 시조나 민요처럼 정형화된 가락이나 고정된 장단체계는 갖추고 있지 않지만, 호흡으로 단락을 맞춘다거나 가사에 따라 고저를 구별하고 특히 종지형에서 음악적인 규칙을 체득하면 더더욱 잘 부를 수 있으며, 시창 역시 송서와 함께 고품격의 멋스러움이 묻어나는 선비문화의 대표적 음악유산이다. 객석에서는 처음 듣는 시창에 숨을 죽이고 무슨 내용을 부르고 있는가 진지하고 조용하게 감상하고 있었다.

다음으로는 추점순 외 4인의 창으로 경기민요 양산도와 뱃노래를 불렀는데, 대부분이 아는 노래여서 그런가 반응이 달라졌다. 이어지는 순서는 대전시 판소리 예능보유자인 고향임 명창과 그 제자들의 단가와 판소리 순서였다. <흥보가> 중 박타는 대목은 이야기의 줄거리를 잘 알고 있는 터였고, 명창의 아니리가 객석을 재미있게 만들어 주었다. 이 날도 소리와 아니리, 그리고 발림을 섞어가며 불러주는 흥보가 중 <박타는 대목>은 객석의 모든 이를 즐겁게 해 준 순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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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가 흥을 돋은 무대였다면 다음 순서인 정효정 교수의 가야금 독주 <영목>은 잠시 열기를 가라앉히는 조용한 시간이 되었다. 12현 가야금의 새로운 주법들을 활용한 창작곡을 감상한 것이다. 연변에서도 가야금은 매우 인기가 높은 분야이다. 중국의 비물질(非物質)문화재로 가야금 음악이 지정되어 있고, 그 문화재를 지켜가고 있는 보유자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김진 교수의 제자 김성삼 교수이기 때문에 가야금 음악에 대한 연변 동포들의 관심은 대단했던 것이다.

고향임, 양희승, 김혜연, 김병혜, 송효진, 김보배 등 남도의 명창들이 발림을 맞추어 가며 여유 있게 불러준 <성주풀이>, <남원산성>, <진도아리랑> 등의 남도민요는 역시 객석을 하나로 만든 순서였다. 이 흥겨운 반응은 다음 순서인 유춘랑 외 2인이 불러준 서도민요 <난봉가>류로 이어졌고, 명창들이 부르는 서도소리의 멋을 공유하면서 청중들 모두는 열심히 서도민요를 따라 부르는 것이었다.

노래가 끝나면서 박준영의 <배뱅이굿>이 이어졌는데, 작년 교류회에서도 정순임 명창의 창작판소리 <유관순 일대기>와 함께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종목이었다. <배뱅이굿>은 서도식 창법으로 부르는 1인 창극조로 <배뱅이>라는 처녀가 혼인 전에 죽게 되자, 그녀의 혼(魂)을 달래주기 위해 굿을 하는 과정을 노래와 아니리, 발림을 섞어 가며 청중을 울리고 웃기는 창극조이다. 이은관 명창의 수제자가 바로 박준영이다. 어려서부터 선생의 음반을 듣기 시작해 그 판이 달아 빠지도록 많이 들었다고 하니 그의 공력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 쪽 공연 마무리는 김병혜와 서편제 소리사랑 팀의 창극조인 심청가의 <뱃노래> 였다. 공연문화의 차이로 박수나 추임새를 아끼던 그들이 마지막 순서에는 앞을 다투어 무대 앞으로 나와 함께 춤도 추고, 목소리도 높였으니 그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공연을 끝내고 대학 쪽의 출연자들과 우리들은 뒷풀이를 함께 하며 오늘의 격앙된 감정을 함께 나누었다.

악자위동(樂者爲同)이라고 했다. 악이라고 하는 것, 이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다시 떠오른다. 그리고 1991년 여름, 처음 연변에서 공연을 하고 당시의 출연진들과 함께 아리랑을 목이 터져 부르던 기억도 새삼스럽게 떠오르는 것이었다.

연변에서 우리를 안내해 주던 관광버스의 안내원이 놀라면서 하던 말이 생각난다. “연변 텔레비전에서나 볼 수 있었던 최고의 연주자, 유명한 성악가들이 다 모여드는 걸 보니 한국에서 오신 여러분들이 대단한 분들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도 공연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여러 선생님들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말투도 공손해 지고, 우리를 대하는 태도도 지극 정성으로 달라졌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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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한 범 / 단국대 명예교수, 한국전통음악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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