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책을 읽자 454

유괴의 날 - 정해연

출판사 리뷰 호구 잡히기 십상이라는 말로 평생 놀림받아온 명준은 오직 현재만 보고 사는 단순한 사람이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은 아픈 딸 희애뿐. 수술을 하지 못하면 희망이 없는 상황에 절망한 명준 앞에, 3년 전 일언반구 없이 사라졌던 희애 엄마 혜은이 나타난다. 희애의 수술비를 위해 부잣집 딸 로희를 유괴하자는 제안과 함께. 범죄는 안 된다며 극구 거부했지만, 로희는 사실 가정 내 폭력에 시달리는 가엾은 아이로, 무사히 돌려보낸 후 몰래 신고해주면 아이를 도와주는 셈이라는 말에 설득되어 결국 범행을 실행한다. 그런데 너무 긴장한 탓일까. 실수로 로희를 차로 치고, 사고 후유증으로 아이는 기억을 몽땅 잃고 만다. 아빠냐고 묻는 로희에게 엉겁결에 그렇다고 대답한 명준은 서둘러 아이를 집에 돌려보내고자 ..

황금종이(전 2권) - 조정래

줄거리 갑자기 이모 댁에 일어난 송사로 골치가 아픈 박현규는 변호사인 친구 이태하를 찾아간다. 사촌 여동생이 아버지가 어머니 몫으로 남겨둔 유산마저 더 차지하려 소송을 걸었던 것이다. 신망이 두텁고 냉철한 변호사 이태하는 가족간에 법적 다툼까지 가기 전에 문제를 원만히 해결할 수 있는 방향을 조언한다. 이처럼 이태하 변호사의 주변에는 돈 문제 때문에 갈등하는 이들의 호소와 발걸음이 이어진다. 대기업 간부로 일하는 두 고교 동창 박현규와 윤민서는 이태하에게 다양한 사건들을 소개하며 그의 신념과 활동을 지지한다. 돈 앞에선 핏줄도 흐려지는가. 동등하게 유산을 받으려는 딸들과 더 많이 가지려는 아들들의 난타전과 ‘금고 습격’. ‘없는’ 이들은 더 고달프다. 급작스럽게 월세 4배 인상을 요구하는 건물주와 갈등하..

뉴스로 세상을 움직이다 - 김현정

매일 아침 「김현정의 뉴스쇼」를 진행하며 현재 가장 뜨거운 이슈와 그에 얽힌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CBS 피디 김현정은 자신이 10여년간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체득한 뉴스 독법을 알려준다. 애초에 음악 프로그램 피디로 시사에 그다지 정통하지 않았던 저자가 깨달은 뉴스 독법이란 ‘뉴스 프레임에서 벗어나기’이다. ‘뉴스’란 사실을 전해도 늘 기자 또는 언론사가 정한 프레임에 갇힐 수밖에 없고, 그 탓에 뉴스에 담긴 사실이 ‘진실’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은 뉴스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선입견을 버리고 다양한 관점에서 하나의 이슈를 바라봐야 비로소 사실 너머에 있는 진실에 도달할 수 있다. 저자는 시사 프로그램을 만들고 진행하며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을, 가장 직접적으로 ..

아버지에게 갔었어 - 신경숙

한국소설에서 그간 비어 있던 ‘아버지’의 자리를 여성작가의 시각으로 새로이 써낸 이번 소설은, 엄마가 입원하자 J시 집에 홀로 남게 된 아버지를 보러 가기 위해 ‘나’가 5년 만에 기차에 오르며 시작된다. 눈앞에 펼쳐질 듯 생생한 묘사로 그려진 J시와 그 안에서 평생을 살아온 아버지의 지나온 삶이 겹쳐지며, 순식간에 ‘나’는 아버지의 삶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아버지는 한국전쟁 트라우마로 고통받아왔으며 “젊은 날에 당신의 새끼들인 우리가 음식을 먹는 걸 보면 무서웠”지만 그것이 도리어 살아갈 힘이 되었다고 말하는, ‘아버지’ 하면 으레 떠오르기 마련인 가부장적인 억압과는 완전히 거리가 먼 인물이다. ‘아버지’ 인물의 생생함은 그가 가진 서사의 리얼리티로도 드러난다. 한국전쟁부터, 돈을 벌기 위해 갔던 서울..

MBC를 날리면 - 박성제

1부는 저자가 5년간의 해직언론인 생활을 종료하고 복직한 후 취재센터장과 보도국장을 맡아 MBC뉴스에 대한 시청자들의 신뢰를 재건하는 데서 시작한다. 촛불집회에서 “어용방송 MBC 물러가라!”는 시민들의 아우성을 들을 정도로 추락한 신뢰도는 하루아침에 회복되지 않았고, 처절한 심정으로 바닥부터 새로이 쌓아올려야 했던 시간을 되돌아보며 저자는 올바른 저널리즘에 대한 고민과 공영방송의 역할에 대한 신념을 내비친다. 2부에서는 사장이 된 후 신출내기 경영인으로서 재정 건전성과 공영방송의 신뢰성을 공고히 하기 위해 기한 시도들, 그리고 변화한 미디어 지형에서 레거시미디어로서 공영방송국이 새로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뇌의 기록이 담겨 있다. 3부에서는 현재 진행형인 윤석열 정부와의 갈등에 대해 직접 입을 연..

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 - 안톤 허

부모님 말은 절대 들어서도, 믿어서도 안 된다. 그들은 자기 인생밖에 모르는 사람들이다. 실수를 해도 자신의 실수를 하는 것이 낫다. 인생을 망쳐도 내 손으로 망쳐야 한다. - 63쪽 - 실패란 없다. 성공으로 가는 과정만 있을 뿐. 다시 말해 우리가 실패라고 생각하는 많은 경우는 성공으로 가는 과정의 일부인 것이다. 실패는 뭔가를 잃는 과정이 아니라 성공을 위해 정보를 수집하는 연구 과정이다. - 137쪽 - 2022년 부커상 국제 부문 롱리스트(1차 후보)에는 한국문학 『저주토끼』와 『대도시의 사랑법』이 지명되었다. 놀랍게도 이 두 작품은 모두 한 사람에 의해 번역되었다. 바로 한국문학 번역가 안톤 허. 이로써 안톤 허는 부커상 역사상 한 해에 두 권의 책을 올린 세 번째 번역가이자 유색인종으로서는 ..

서귀포를 아시나요 - 서명숙

서명숙이 제주에서 시작한 길은 규슈올레, 몽골올레, 스위스올레까지 뻗어나가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백두산 자락, 두만강변에 있는 도시로 향한다. 어머니의 고향 서귀포에서 아버지의 고향 무산까지 남북을 잇는 피스(peace)올레를 내고 그 길을 사람들과 같이 걷고 싶다는 꿈을 담아 그 첫걸음을 『서귀포를 아시나요』에서 시작한다. 서명숙은 터키 이스탄불과 프랑스 프로방스 못지않은 중층적 매력을 지닌 서귀포라는 소도시에 켜켜이 쌓인 역사의 지층도 들춰내 환기해준다. 서복공원 절벽에서 스러진 4·3 희생자들, 일제강점기 강제노동에 시달린 제주 삼촌들을 떠올리게 하는 공간을 걷고 또 걸으며 아름다운 풍경 이면의 슬픔을 실감하기도 했다. 특히 2020년이면 50주기를 맞는 서귀포판 세월호 ‘남영호 사건’의 악몽을 ..

우리말은 서럽다 - 김수업

오늘날 우리의 말글살이에 대한 저자의 안타까움이 담겨 있다. 저자는 우리가 쓰는 말 중에 한자말, 일본말, 미국말이 상당히 많이 섞여 있다고 얘기하며, 이는 우리말을 업신여기며 살아온 세월에서부터 비롯된다고 이야기한다. 말이라는 것은 그 말을 쓰는 민족의 인생과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그릇과도 같은데, 다른 나라의 말을 함부로 섞어 쓰면 그 겨레의 본질과 혼이 훼손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쓰는 말을 잘 살펴보면 오히려 영어와 한자가 우리말보다 더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순수 한글 토박이말은 낮고 하찮은 말이라는 인식이 굳어져, 우리 한글은 현재 아주 처량한 신세에 놓여 있다. 저자는 이러한 실태를 매우 안타깝게 여기며 이 책을 집필하였다.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처럼 심각한 문제를 ..

안젤리크 - 기욤 뮈소

『안젤리크』는 기욤 뮈소가 작가에 주목했던 소설에서 반전과 서스펜스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이야기꾼으로 되돌아왔음을 알리는 작품이다. 언제나 자신이 치열하게 살아왔지만 세상이 공정한 대우를 해주지 않아 늘 같은 자리를 맴돌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진 간호사 안젤리크 샤르베, 지하철에서 불량배가 휘두르는 칼을 온몸으로 막아내며 여성 승객의 안전을 지켜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추격 과정에서 총을 발사해 범인이 반신불수가 되는 바람에 여론의 비난에 직면하고 감찰까지 받게 된 강력반 반장 마티아스 타유페르, 태어나자마자 생모에게 버림받고 새엄마를 유일한 엄마로 알고 자라지만 그 엄마마저도 석연치 않은 죽음을 맞게 되자 직접 진실 규명을 위해 뛰어든 의대생 루이즈 콜랑주, 각고의 노력 끝에 영광스러운 파리 오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