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81

주시경의 표기 이론과 『국어문법』의 의미

‘국문의 어릿광대’ 『국문강의』(1906)의 발문에서 주시경은 “나는 다만 국문의 한 어릿광대 노릇이나 하려는 것이니, 고명하신 분들이 앞으로 말과 글을 연구하고 수정하여 좋은 도구로 만들어주시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그랬다. 그가 바랐던 것은 그저 ‘국문의 어릿광대’가 되는 것일 뿐이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국문’, ‘고명하신 분들’에게는 더욱 더 외면당하던 ‘국문’이 자신의 어릿광대짓으로나마 그분들의 관심을 끌게 된다면, 그리하여 진지한 연구의 대상이 되기만 한다면 그것으로 자신은 족하다는 것이었다. ‘국문의 어릿광대 노릇이나 하겠다’는 주시경의 말은 그러나 그저 겸손의 표현이었던 것만은 아니다. 아마 당시에 그는 후대의 사람들에게 자신이 ‘국어 연구의 선구자’로 평가받게 될지는 꿈에도 생..

실천적 지식인 주시경 선생의 업적

세종이 1443년 12월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의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하고 많은 책을 훈민정음으로 펴냈다. 특히 의서ㆍ농서 등 백성들의 실생활에 필요한 책과 어린이와 여성들을 위한 교훈서 등이 많았다. 예나 지금이나 일반 백성ㆍ국민을 위하고자 하는 정책에는 기득권 세력의 거센 도전이 따른다. 당시 최만리 등 조정의 중신들과 각지의 유생들이 드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중국과 다른 문자를 만드는 것은 사대의 예에 어긋나며, 중국과 다른 문자를 쓰는 나라는 오랑캐들뿐’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군왕이 1446년 훈민정음을 반포하였지만 지배층에서는 19세기까지 훈민정음을 언문(諺文)이라 비하하고, 어린이와 부녀자들의 글로 치부하였다. 말(언어)은 한국어로 하면서 글(씨)은 한문으로 쓰는 실정이었..

(얼레빗 4442호) 우리말 속에 한자말이 70~80%가 된다구요?

며칠 뒤면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훈민정음을 반포한 세종대왕의 뜻을 기리기 위한 제574돌 한글날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큰 뜻을 지닌 한글날은 1990년에 바다의 날, 조세의 날과 같은 일반기념일이 되었습니다. 이에 한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글날 국경일 승격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덕분에 2005년 12월 8일 드디어 '국경일에관한법률중개정법률안'이 통과되어 국경일이 되었고, 2013년 한글날부터는 공휴일로 기리게 되었습니다. 그 뒤 해마다 한글날만 되면 큰잔치를 한다고 요란을 떨지만, 여전히 한글은 물론 우리말은 푸대접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푸대접의 바탕에는 “우리말 속에 한자말이 70~80%를 차지한다.”라는 한자를 숭배하는 학자들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닌지 모릅니다. 이 말이 사실일까요?..

(얼레빗 4391호) 훈민정음을 한글이라 부르게 한 주시경 선생

“길고 긴 나의 학문의 바다 여정에서 직접 간접으로 나의 나아갈 길을 지도해 주신 스승이 적지 아니하였지마는, 그중에서 나에게 결정적 방향을 지시하였고, 따라 나의 추모의 정한을 가장 많이 자아내는 스승님은 조선 청년이 누구든지 다 잘 아는 근대 조선어학 최대의 공로자인 한힌샘 주시경 씨이다. (가운데 줄임) 오늘날 같으면 조선어 선생도 여기저기서 구할 수 있지마는 그 당시에는 주 선생 한 분뿐이었다.” 위는 잡지 《조광》 1936년 1월호에 실린 외솔 최현배 선생의 "조선어의 은인 주시경 선생"이란 글 일부분입니다. ▲ 주시경 선생(1876~1914)과 선생이 1914년 펴낸 《말의 소리》, 독립기념관 제공 평생 배달말(우리말)을 올곧게 사랑하고 실천하고 가르치신 한힌샘 주시경 선생(1876~1914)..

문장 부호 전문 (8) - 13. 겹낫표와 겹화살괄호, 14. 홑낫표와 홑화살괄호

13. 겹낫표(『 』)와 겹화살괄호(≪ ≫) 책의 제목이나 신문 이름 등을 나타낼 때 쓴다. (예)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신문은 1896년에 창간된 『독립신문』이다. (예) 『훈민정음』은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예) ≪한성순보≫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신문이다. (예..

(얼레빗 4181호) ‘故人의 冥福’을 꼭 한자로 빌어야 만 하나?

장례식장에 가보면 분향실 입구에 많은 조화들이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조화의 리본에는 거의가 “삼가 故人의 冥福을 빕니다.”라는 글귀가 적혀있습니다. 더러는 “謹弔”라고 쓴 것도 있습니다. 그렇게 한자로 써야 품위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에 아직도 상가집 조화 리본..

(얼레빗 4051호) 광화문 현판, 훈민정음서 따모아 한글로 쓰자

한국문화편지 4051호 (2019년 04월 08일 발행) 광화문 현판, 훈민정음서 따모아 한글로 쓰자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051][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光化門) 현판이 또 바뀐다고 하는데 광복 이후로만 네 번째 현판을 바꿔다는 것입니다. 문화재청은 지난 1월 30일 "광화..

11월 4일 -조선어학회가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발표했습니다

우리 겨레는 세종 큰 임금이 만들어주신 세계 최고의 글자, 한글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처럼 자유자재로 한글을 쓸 수 있는 것은 한힘샘 주시경 선생과 일제강점기의 조선어학회 그리고 해방 뒤의 외솔 최현배 선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문제는 훈민정음이..

10월 13일 - 위대한 글자 한글 다섯, 반대세력을 이겨낸 훈민정음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든 것은 당시로는 정말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부제학 최만리를 비롯한 집현전 학자 대부분은 물론 나라의 바탕인 사대부들이 거의 새로운 글자 창제를 적극적으로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나라를 세운 지 50여 년밖에 되지 않아 조정에서는 명나라의 눈치를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