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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의 교육 (4) - 덕성을 중시하는 교육

4. 덕성을 중시하는 교육 왕자 주변에는 이미 좋은 성품을 가진 사람들만 배치되었으므로 왕자는 이들의 말과 행동을 따라 배우며 덕성을 기를 수 있었다. 또한 왕자가 최초로 배우는 소학은 초학자가 오륜(五倫)을 습득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예절 교육으로 채워져 있었다. 『소학』에 나오는 예절 교육을 보면, 학생은 스승 앞에서 옷을 갖추고 자세를 똑바로 하도록 했으며,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부모님께 문안 인사를 올리고, 저녁이 되면 부모님의 잠자리를 보살펴 드리게 했다. 또한 부모님이 식사를 하실 때에는 시선(視膳)이라 하여 음식의 맛이 좋은지 국이 식지는 않았는지를 살피게 했고, 부모님이 병환을 앓으시면 시탕(侍湯)이라 하여 한약을 달이는데 정성을 기울이고 약을 먼저 맛본 다음에 올리게 했다. 조선 왕..

세자의 교육 (3) - 환경을 중시하는 교육

3. 환경을 중시하는 교육 왕실 교육에서는 특히 환경을 중시했다. 산모의 태교가 환경을 중시하는 교육이었지만, 왕자의 유모를 선발하는 데에도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왕자의 유모는 아이가 어린 시절에 가장 가까이에서 영향을 주는 사람이기에 매우 특별한 존재였다. 유모는 민간인 중에서 후덕하고 건실한 성품을 가진 사람을 뽑았으며, 만약 천인 출신이라면 면천(免賤)이라 하여 양인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키운 아이가 국왕이 되면 유모는 봉보부인으로 봉해졌다. 이는 종1품에 해당하는 관직으로 육조의 판서보다 높은 직급의 자리였다. 어릴 때부터 가까이에서 지낸 국왕과 유모의 사이는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국왕이 목욕할 때 수발을 드는 사람이 유모였고, 왕비가 난산(難産)을 하면 국왕은 자기 유모를 보내는 것으..

세자의 교육 (2) - 최초의 교육, 태교

2. 최초의 교육, 태교 국왕과 왕비가 어렵게 만나 합궁을 하고 왕비가 임신을 한 것이 확인되면, 태아를 위한 태교(胎敎)가 시작되었다. 이이가 작성한 『성학집요(聖學輯要)』의 「교자(敎子, 자식을 가르침)」편을 보면 태교에 관한 구절이 있다. 옛날에는 부인이 아이를 임신하면 옆으로 누워 자지 않고, 비스듬히 앉지 않으며, 한쪽 발로 서지 않고, 맛이 야릇한 음식을 먹지 않았다. 사특한 색깔을 보지 않고, 음란한 소리를 듣지 않으며, 밤이 되면 장님에게 시를 외우고 바른 일을 말하게 하였다. 이는 사대부의 부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태교를 중시하는 것은 왕실이든 민간이든 마찬가지였다. 말하자면 태교는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받는 최초의 교육이라고 하겠다. 태교는 태아가 성장하는 환경을 중시하는..

세자의 교육 (1) - 국왕을 규제하는 방법

세자의 교육 김 문 식(단국대) 1. 국왕을 규제하는 방법 국왕이라면 국가의 운명과 직결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권력이 대통령에게 집중되는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 살고 있지만, 조선의 국왕은 대통령보다 훨씬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가 있었다. 오늘날의 정부 기구는 입법, 사법, 행정 등 삼부(三府)로 나눠져 있고, 대통령은 그중에서도 행정부의 수반으로 일하고 있다. 그렇지만 국왕은 삼부를 총괄하는 최상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대통령의 임기는 5년 단임제에 불과하지만 국왕의 임기는 일단 왕위에 오르면 특별한 결함이 없는 한 평생토록 지속하는 종신직이었다. 국왕은 이처럼 막강한 존재였기에 제대로 된 국왕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 국가의 운명은 극도로 위험해 질 수 있었다. 실록에서 장차 ..

조선의 세자 - 세자의 대리청정

7. 세자의 대리청정 대리청정(代理聽政)은 국왕이 건강상의 이유로 통상적인 정사를 돌보기 어려울 때 차기 왕위계승자인 왕세자[또는 왕세손]가 국정을 대신하여 다스린 것을 뜻한다. 조선시대에는 주로 ʻ청정(聽政)ʼ으로 불리었으며, 때로는 ʻ대리(代理)ʼ로 약칭되기도 했다. 대리청정 시 왕세자 및 왕세손을 소조(小朝)라 하고, 국왕을 대조(大朝)라 했다. 이는 대체로 군권 및 인사 등은 국왕이 여전히 보유하고 있으면서 대권을 행사하고 정사 실무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왕세자에게 허락된데서 연유한 것이기도 하다. 대리청정의 기원을 《춘관통고》에서는 정종(定宗)년간 왕세자[태종]의 군국기무(軍國機務) 장악으로 보고 있으나, 이는 향후 정착되는 대리청정기에 여전히 국왕이 군권 및 인사권을 장악하는 현상과는 전혀 다..

조선의 세자 - 세자의 혼례

6. 세자의 혼례 세자의 혼례(婚禮)는 가례(嘉禮)에 포함된다. 가례(嘉禮)는 원래 왕실의 큰 경사를 뜻하는 말로서 왕실의 혼인이나 책봉 등의 의식 예법을 모두 뜻했다. 《주례(周禮)》에서도 ʻ이가례친만민(以嘉禮親萬民)ʼ이라 하여, 가례(嘉禮)가 만민(萬民)이 참여하여 행할 수 있는 의식임을 설명했다. 그만큼 가례는 상하 모두가 함께 행할 수 있는 의례였다. 가례의 분류에는 본래 조정의 통상적인 예제 등이 폭넓게 포함되지만, 현존하는 《가례도감의궤(嘉禮都監儀軌)》등에서 사용되는 가례(嘉禮)는 왕실의 혼례에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다만 본래 가례에 책례와 관례가 모두 포함되는 만큼 여기서는 ʻ왕세자의 혼례ʼ로 구분하였다. 조선시대 궁중의 혼례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例..

조선의 세자 - 세자의 관례

5. 세자의 관례 관례(冠禮)는 성년식을 의미한다. 관례를 치르면 남자는 상투를 틀고 관을 썼기에 관례라 했다. 여자는 쪽을 찌고 비녀를 꽂아서 계례(笄禮)라고 했다. 어린이와 성인은 머리모양에서부터 차이가 났다. 사대부가의 자녀인 경우, 결혼하기 전 15세~20세에 적절한 해의 정월에 날을 정해서 관례를 치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또 관례를 치르는 사람은 《효경(孝經)》이나 《논어(論語)》에 능통하고 기본적인 예의를 익히고 있어야 했으며, 그 부모가 기년(1년) 이상의 상복이 없는 경우에만 거행할 수 있었다. 관례를 혼례보다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비록 미혼이더라도 관례를 마치면 성인으로서의 대접을 받았다. 성인이 되면 낮춤말을 함부로 쓰지 않았으며,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고 남자는 자(字)를, 여자는..

[알기 쉬운 우리 새말] 새롭게 힘받아 뜨는 말들

다듬을 외국어 새말 후보를 훑어보던 새말모임 위원들 중 몇 사람이 고개를 갸웃했다. 디제라티(digerati)? 이게 무슨 뜻이지? 풀이를 보니 디지털(digital)과 지식인을 뜻하는 ‘리터라티’(literati)를 붙인 합성어다. 정보화 시대를 이끌어 가는 새로운 지식 계층을 뜻한다고 한다. 다시 한번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평소 우리말 순화에 관심을 두고 불필요한 외국어 표현이 새로 등장하는 현상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새말모임 위원들에게조차 낯선 단어가 아닌가. 그렇다면 일반 국민에게는 더더구나 낯설 법한 단어를 서둘러 다듬어야만 할까? 위원들은 잠시 고민을 했다. 결론은 이러했다. 이미 많이 쓰고 있는 외국어를 우리말로 순화하는 작업은 물론 시급하지만, 아직은 낯선 단어를 한 발짝 빨리 새말로 ..

조선의 세자 - 세자의 책례

4. 세자의 책례 세자 책봉의식은 국왕이 자신의 후계자를 공식화하여 조선 팔도에 알리는 중대한 행사였다. 행사의 의미가 컸던 만큼 의식도 복잡하고 엄숙하게 진행되었다. 책례의(冊禮儀)는 가례(嘉禮)에 속한 의례로서 왕세자ㆍ왕세손ㆍ왕세제나 왕비ㆍ세자빈 등을 책봉하는 의식이었다. 관례나 혼례 같은 일생의례와는 달리 국가의 종통을 세우는 정치행위라고 할 수 있으며, 예치국가의 질서를 확립하고 유지하기 위한 목적에서 시행되었다. 특히 세자 책봉례는 책문(冊文)이나 교명문(敎命文)에 잘 나타나 있듯이 장차 천명에 의해 부여된 왕통과 교화를 책임질 군주로서의 지위를 계승할 권리를 세자에게 부여하는 의식이었다. 세자는 국가의 대본(大本)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그 지위에 부합하는 의제(儀制)가 마련되어 있었다. 조선시..

조선의 세자 - 세자의 탄생과 원자생활, 교육

2. 세자의 탄생과 원자생활 세자의 일생은 탄생에서 시작된다. 세자의 탄생을 위해 이미 지극한 정성을 들인 태교가 수행되었다. 태어나기 전부터 성군(聖君)이 되기를 원하는 바람 속에서 최고의 정성을 기울인 태교가 시도되었다. 조선초기부터 이와 관련하여 《태산요록(胎産要錄)》이 만들어졌고, 이후 《태산집요(胎産集要)》나 《태교신기(胎敎新記)》와 같은 기록이 저술되었다. 세자의 출산을 위해서도 조선의 왕실에서는 출산전담기관으로 비빈(妃嬪)을 위한 산실청(産室廳)과 후궁을 위한 호산청(護産廳)을 두었는데 산실청은 중전의 경우 3개월 전에 설치하며, 산실청 설치 기간에는 형벌 집행을 하지 않고 출산 후 7일째 되는 날 산실청을 폐지했다. 아직 세자가 되기 전 단계인 원자(元子)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보양청(輔養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