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아름다운 우리문화 산책(김영조) 142

따듯한 마음이 드러나는 공재 윤두서의 그림들

따듯한 마음이 드러나는 공재 윤두서의 그림들 해남 윤씨 문헌海南尹氏文獻 「공재공행장恭齋公行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그해 마침 해일海溢이 일어 바닷가 고을은 모두 곡식이 떠내려가고 텅 빈 들판은 벌겋게 황톳물로 물들어 있었다. 백포白浦는 바다에 닿아 있었기 때문에 그 재해災害가 특히 극심하였다. 인심이 매우 흉흉하게 되어 조석 간에 어떻게 될지 불안한 지경이었다. 관청에서 비록 구제책을 쓰기는 했으나 역시 실제로는 별다른 혜택이 없었다. 이에 공재 윤두서는 마을 사람들이 함께 산의 나무를 베어내서 소금을 구워 살길을 찾도록 해주었습니다. 한 마을 수백 호의 주민이 그의 도움을 받아 떠돌아다니거나 굶어 죽는 일이 없게 되었지요. 윤두서는 단순히 곡식을 나누어주는 것으로 가난한 이들을 구하는 도..

괴석과 난초가 어우러진 흥선대원군의 <묵란도>

괴석과 난초가 어우러진 흥선대원군의 사군자 가운데 대나무가 남성적이라면 난초는 여성적이며 특히 명문가의 귀인을 뜻한다고 알려졌습니다. 이는 왕비의 처소를 ‘난전蘭殿’, 미인의 침실을 ‘난방蘭房’이라고 하는 데서도 알 수 있지요. 중국의 『본초경』에는 난초를 기르면 집안에 나쁜 일이 생기는 것을 막아주고, 잎을 달여 먹으면 해독이 되며 노화현상을 막는다고 쓰여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난초 그림은 귀신을 물리치는 뜻으로 여겨왔지요. 난초 그림 가운데 유명한 것으로,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이 만 71세 때인 1891년에 그린 12폭 병풍 가 있습니다. 그림은 2폭 씩 대칭구도를 이루도록 배치되어 있는데, 각 폭에는 다양한 괴석과 난초가 어우러져 있지요. 난초 잎은 뿌리에서 촘촘히 자라나 위로 한껏 기세를 뿜..

민화에 잉어와 죽순이 등장하는 까닭은?

민화에 잉어와 죽순이 등장하는 까닭은? 호랑이를 우스꽝스럽게 그린, 민중들의 생각이 그대로 반영된 가장 한국적인 그림이라고 하는 ‘민화民畵’를 아십니까? 보통 민화는 비전문적인 화가나 일반 대중의 치졸한 작품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도화서圖畫署의 화원畫員 같은 전문 화가가 그린 뛰어난 그림도 있습니다. 민화에는 나쁜 귀신을 쫓고 경사스러운 일을 맞기를 바라는 대중의 의식과 삶에 얽힌 그림, 집 안팎을 꾸미기 위한 그림 등이 있지요. 그런데 민화 가운데는 글씨를 이용해 그린 도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중요하게 여겼던 윤리도덕에 관련된 글씨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지요. 에 주로 쓰인 글자는 효孝, 제悌, 충忠, 신信, 예禮, 의義, 염廉, 치恥 이렇게 여덟 글자입니다. 그래서 는 주로 사랑방이나 글을 배우..

변상벽의 <묘작도>, 70세 노인에게 기쁜 소식을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죽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이장희의 시 「봄은 고양이로다」입니다. 따사로운 봄기운이 고양이의 눈과 입과 수염에 내려앉은 모습을 잘 그려냈습니다. 그런데 여기, 조금 다르지만 봄과 고양이를 그린 조선 후기 화가 변상벽의 그림이 있습니다. 라는 이 그림에서 참새를 쫓아 나무 위에 올라간 고양이 한 마리가 나무 아래에 있는 동무를 내려봅니다. 고양이의 털을 일일이 잔 붓질로 꼼꼼하게 묘사한 영모화翎毛畵지요. 는 봄기운이 물씬 나는 그림이지만 사실은 그림을 선물한 사람의 축원이 담겨 있습니다...

세화와 축수용으로 선계를 그린 <십장생도>

오래 사는 것 열 가지를 그린 것을 ‘십장생도十長生圖’라고 합니다. 그런데 열 가지가 안 되면 그저 ‘장생도長生圖’라 부르고, 한 가지씩 그린 것이면 ‘군학십장생도群鶴十長生圖’ ‘군록십장생도群鹿十長生圖’처럼 부르기도 하지요. 십장생으로는 보통 해, 구름, 뫼(산), 물, 바위, 학, 사슴, 거북, 소나무, 불로초를 꼽지만 그밖에 대나무와 천도天桃(하늘나라에서 나는 복숭아)를 그리기도 합니다. 보통 가운데에 사슴이나 학을 그리고 왼편에 바다와 거북을 그리는데, 아름다운 빛깔을 최대한 살려 상상 속의 선계仙界를 묘사하며, 대체적으로 8~10폭으로 된 병풍 그림이 많습니다. 새해에 임금이 신하들에게 장생도를 선물로 내렸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는 주로 왕실 등에서 오래 살기를 비는 축수祝壽용 그림이나 세..

옥황상제도 홀린 금강산의 절경

옥황상제가 금강산의 경치를 돌아보고 구룡연 기슭에 이르렀을 때, 구룡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보고는 관冠을 벗어 놓고 물로 뛰어들었다. 그때 금강산을 지키는 산신령이 나타나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물에서 목욕을 하는 것은 큰 죄다”라고 말하고 옥황상제의 관을 가지고 사라졌다. 관을 빼앗긴 옥황상제는 세존봉 중턱에 맨머리로 굳어 바위가 되었다. 금강산에 전해지는 설화입니다. 금강산이 얼마나 절경이었으면 옥황상제마저 홀렸을까요? 심지어 중국인들조차 금강산에 가보는 게 소원이라 할 정도였지요. 『태종실록』 4년(1404년) 9월 21일 기록에는 태종이 이렇게 묻는 대목이 나옵니다. “중국의 사신이 오면, 꼭 금강산을 보고 싶어 하는데,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속언에 말하기를, 중국인에게는 ‘고려 나라에 태어나 ..

조선에서 가장 아름다운 초상화를 보셨나요?

조선 후기 초상화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걸작, 보물 제1483호 을 보셨나요? 비단 바탕에 채색한 그림으로 세로 99.2cm, 가로 58cm이며,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초상화는 이채가 지체 높은 선비들이 입던 무색 심의深衣를 입고 중층 정자관程子冠을 쓴 뒤 두 손을 마주 잡은 채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반신상입니다. 그런데 을 비롯한 조선의 초상화는 극사실화極寫實畵와 전신사조傳神寫照로 그렸지요. 먼저 이 초상에서 이채의 눈매를 보면 홍채까지 정밀하게 묘사되어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것은 물론, 왼쪽 눈썹 아래에는 검버섯이 선명하게 보이며, 눈꼬리 아래에는 노인성 지방종까지 보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살을 파고 나온 수염을 하나하나 세밀히 그렸으며, 오방색 술띠를 한 올 한 올 거의 ‘죽기 살기..

마음속에 102개 벼루를 품은 부자 조희룡

추사 김정희를 50년 동안 스승으로 모시고 글씨와 그림을 배운 우봉又峰 조희룡趙熙龍은 중인 출신 화원이었습니다. 그는 벼루를 극진히 사랑했던 사람이지요. 자신의 서재 이름도 ‘102개의 벼루가 있는 시골집’이라는 뜻으로 ‘백이연전전려百二硯田田廬’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조희룡이 벼루를 좋아했던 것은 쉽게 뜨거워졌다가 쉽게 차가워지는 염량세태炎涼世態 속에서 벼루는 언제나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벼루는 군자를 가까이하고 소인을 멀리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그렇게 아끼던 벼루도 그가 유배에서 풀려나 돌아왔을 때는 모두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하지만 눈앞에 벼루가 남아 있지 않았어도, 그는 매화가 활짝 필 때면 그토록 아끼던 벼루를 꺼내 여전히 먹을 갈았지요. 평생 마음속에 담아둔 벼루는 그대로 남..

풍류, 맑은 바람과 밝은 달빛에 취하기

예전 선비들은 풍류風流를 즐길 줄 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풍류란 무엇일까요? 바람 ‘風’ 자와 물흐를 ‘流’ 자를 합친 ‘풍류’라는 말을 사전에서는 ‘풍치가 있고 멋스럽게 노는 일’ 또는 ‘운치가 있는 일’로 풀이합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학자는 ‘속俗된 것을 버리고 고상한 유희를 하는 것’으로 풀이하기도 하고, 또 ‘음풍농월 吟風弄月’ 곧 ‘맑은 바람과 달빛에 취하여 시를 짓고 즐겁게 노는 것’으로 보기도 하지요. 옛 그림을 살펴보면 선비들 풍류의 삶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단원 김홍도는 천하가 알아주는 멋진 풍류객이었는데, 꽃피고 달 밝은 저녁이면 거문고나 젓대를 연주했다고 합니다. 그런 그의 풍류는 라는 그림에서 잘 드러나지요. 그림 속의 선비는 책과 문방구 따위 여러 가지 물건 속에서 당비파를 ..

신사임당 딸이 그린 <매창매화도>

희뿌연 매화꽃은 더욱 빛나고 小白梅逾耿소백매유경 새파란 대나무는 한결 고와라 深靑竹更姸심청죽갱연 난간에서 차마 내려가지 못하나니 憑欄未忍下빙난미인하 둥근 달 떠오르기 기다리려 함이네 爲待月華圓위대월화원 선조 때 여류시인 이옥봉의 「등루登樓」입니다. 매화는 예부터 우리 겨레가 사랑해온 꽃입니다. 매화를 사랑한 여성으로 신사임당의 딸인 이매창이 있는데, 그녀는 어머니의 재능을 이어받아 뛰어난 매화 그림을 그렸지요. 강릉 오죽헌 율곡기념관에는 강원도유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된 이매창의 ‘매화도’가 전해옵니다. 로 불리는 이 그림은 가로 26.5㎝, 세로 30㎝의 종이에 그린 묵화입니다. 굵은 가지와 잔가지가 한데 어우러져 은은한 달빛 아래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는 매화를 실제로 보는 듯하며, 깔끔한 분위기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