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아름다운 우리문화 산책(김영조) 142

빗에 이를 그려 넣은 김명국

김명국은 화가다. 그의 그림은 옛것을 배우지 않고 오로지 마음에서 얻은 것이었다. 인조 때 조정에서 머리에 필요한 빗, 빗솔, 빗치개 같은 것을 넣어두는 화장구인 빗접을 노란 비단으로 만들어주면서 명국에게 거기에 그림을 그리라고 했다. 그가 열흘 뒤에 바쳤는데 그림이 없었다. 인조는 노해 그를 벌주려 했다. 그러자 명국이 말했다. “정말 그렸사옵니다. 나중에 자연히 아시게 될 것이옵니다.” 어느 날 공주가 새벽에 머리를 빗는데 이 두 마리가 빗 끝에 매달려 있었다. 손톱으로 눌러도 죽지 않아 자세히 보니 그림이었다. 조선 후기 문신 남유용南有容의 『뇌연집雷淵集』에 실린 화원 김명국에 대한 글입니다. 빗접에 그린 그림이 아마도 세심히 보지 않으면 눈에 뜨지 않을만큼 실물크기인 데다가 극사실화였나 봅니다. ..

한 기업인이 사회에 환원한 <노송영지도>

겸재 정선의 는 가로 103cm, 세로 147cm인 초대형 그림입니다. 휘굽어 늙은 소나무 한 그루가 화폭을 가득 채우고 담분홍빛 영지버섯이 그려져 있지요. 장수를 비는 십장생도十長生圖 계통의 작품으로, 그림 오른쪽 아래에 적힌 ‘을해추일 겸재팔십세작乙亥秋日 謙齋八十歲作’이라는 글을 통해 겸재 정선이 80세에 그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화가 정선의 원숙함이 느껴지는 작품이지요. 보통 소나무만 크게 부각시켜 그리는 경우는 드물기에, 과감하게 소나무 한 그루만 화폭 전면에 그린 이 는 파격적이라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정선의 묵법이 잘 표현된 는 2000년 경매사상 최고가인 7억원에 OIC 그룹 이회림 명예회장이 낙찰 받았지요. 그는 부를 사회에 환원한다는 평소 지론대로 이 와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포함하여..

서양에는 고흐, 동양에는 천재화가 최북

“저런 고얀 환쟁이를 봤나. 그림을 내놓지 않으면 네놈을 끌고 가 주리를 틀 것이야.” “낯짝에 똥을 뿌릴까보다. 너 같은 놈이 이 최북을 저버리느니 차라리 내 눈이 나를 저버리는 것이 낫겠다.” 최북이 침을 퇴퇴 뱉고는 필통에서 송곳을 들고 나왔다. 그러고는 양반 앞에서 송곳으로 눈 하나를 팍 찌르는 것이 아닌가. 금세 눈에서는 피가 뻗쳤다. 비로소 그가 놀라 말에 오르지도 못한 채 줄행랑을 쳤다. 민병삼 장편소설 『칠칠 최북』에 나오는 대목인데 최북이 왜 애꾸가 되었는지를 잘 그려주고 있습니다. 지난 2012년은 탁월한 그림으로 양반과 세상에 맞섰던 천재화가 최북이 태어난 지 300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이를 기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최북 탄신 300주년 기념전시’를 열었지요. 최북이 그린 산수화와 ..

부패한 양반과 파계승을 풍자한 한량무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3호 한량무(閑良舞)를 보셨나요? 진주(晉州) 지방에 전해 내려오는 교방 계통의 무용극입니다. 여기서 ‘한량’이란 양반 출신으로 노상 놀고먹는 사람을 이르는데, 한량무는 한량과 승려가 한 여인을 유혹하는 내용을 춤으로 표현한 무언무용극(無言舞踊劇)입니다. 원래 이 춤은 조선 중기 이후 남사당패 가운데 무동(舞童)이 놀았던 것으로 조선시대 말까지 계속해서 연행되었으나, 남사당패가 흩어지면서 1910년 이후 어른의 무용으로 기방에서 주로 추게 됩니다. 지역마다 한량무와 비슷한 춤들을 추었으나 이제는 거의 없어지고 진주에서만 1979년에 재연되어 지방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고종 때 정현석(鄭顯奭)이 엮은 『교방가요(敎坊歌謠)』나 『진주의암별제지(晉州義岩別祭志)』 등에 보면 예부터 진..

거친 해학을 통한 웃음, 재담소리 <장대장타령>

별감 자네는 어느 장에 무슨 장산가? 생선장사 나는 마포장에 생선장수올시다. 뼈 없는 문어, 등 굽은 새우, 흉물흉측한 오징어란 놈은 눈깔을 빼서 꽁무니에 차고, 생선가게 망신은 꼴뚜기가, 키 큰 갈치, 썩어도 준치, 맛 좋은 꽁치, 뼈대 있는 집안 멸치라. 별감 자네는 어디서 왔는가? 엿장수 저 화개장터에서 온 엿장수요. 찢어진 시계나 채권 삽니다. 머리카락 빠진 것, 고무신짝 떨어진 것, 놋대야 깨진 것, 신랑신부 뽀뽀하다 금이빨 빠진 것, 자~ 고물 삽니다, 고물~ 재담소리 에 나오는 한 대목입니다. ‘재담(才談)소리’란 재치있는 문잡을 주고받아 흥미를 이끌어내는 이야기를 하면서 소리도 하는 국악의 한 장르를 말합니다. 재담소리 가운데는 이 가장 많이 알려졌는데, 장지영(張志暎) 장군과 무당 출신 ..

분노 대신 풍류와 해학으로 역신을 쫓는 처용무

서울(오늘날 경주) 밝은 밤에 밤늦게 노니다가 / 들어와 잠자리를 보니 / 가랑이가 넷이도다 / 둘은 나의 것이었고 / 둘은 누구의 것인가? / 본디 내 것이지만 / 빼앗긴 것을 어찌 하리오? 신라 헌강왕 때 처용이 지었다는 8구체 향가 입니다. 이 처용가를 바탕으로 한 궁중무용 ‘처용무(處容舞)’가 있습니다. 처용무는 원래 궁중 잔치에서 악귀를 몰아내고 평온을 빌거나 음력 섣달 그믐날 나례에서 복을 빌면서 춘 춤이었지요. 『삼국유사』의 「처용랑 망해사(處容郞 望海寺)」 조에 보면, 동해 용왕의 아들로 사람 형상을 한 처용(處容)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어 천연두를 옮기는 역신(疫神)에게서 인간 아내를 구해냈다는 설화가 나옵니다. 그 설화를 바탕으로 한 처용무는 동서남북과 가운데의 오방(五方)을 상징하는..

26편의 향악이 담긴 『시용향악보』

나례(儺禮)란 민가와 궁중에서 음력 섣달 그믐날에 묵은해의 귀신을 쫓아내려고 베풀던 의식을 말하는데, 『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에 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시용향악보』는 향악의 악보를 기록한 악보집으로 1권 1책으로 되어 있지요. 향악(鄕樂)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사용하던 궁중음악의 한 갈래로, 삼국시대에 들어온 당나라 음악인 당악(唐樂)과 구별되는 한국 고유의 음악을 말합니다. 『시용향악보』에는 악장을 비롯한 민요, 창작가사 등의 악보가 실려 있는데, 그 가운데 가사(歌詞/歌辭)는 모두 26편입니다. 1장에 수록되어 있는 가사 가운데 , 을 비롯한 16편은 다른 악보집에 전하지 않아 귀중한 자료입니다. 이 16편에는 순 한문으로 된 , 한글로 된 , 등이 있고, , 과 같이 가사가 아닌 ‘리로노런..

칼을 휘두르며 추는 검무

칼을 휘두르는 것이 예술이 됩니다. 바로 ‘검무’를 말하는데 ‘검기무(劒器舞)’ 또는 ‘칼춤’이라고도 하지요. 『동경잡기(東京雜記)』와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검무의 유래가 나옵니다. 신라 소년 황창(黃昌)이 백제에 들어가 칼춤을 추다가 백제의 왕을 죽이고 자기도 죽자, 신라인들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그 얼굴을 본떠 가면을 만들어 쓰고 칼춤을 추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조선시대 성종 때 펴낸 『악학궤범』에 나와 있지 않은 점으로 보아 조선 초기에는 성행하지 않은 듯합니다. 그 뒤 숙종 때 김만중(金萬重)이 쓴 라는 칠언고시에 따르면 기녀들이 가면 없이 추었습니다. 경술국치 이후 관기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민간사회로 나온 기녀들이 계속 검무를 추었지만, 일부 지방에서만 그 명맥이 이어졌습니다...

종 하나를 나무틀에 매단 특종

편종(編鐘)처럼 생긴 종 하나를 나무틀에 매단 국악기 특종(特鐘)을 보셨나요? 16개의 종을 가진 편종과 연원을 같이하는 중국 고대의 타악기라고는 하나, 고려 예종 11년(1116년)에 송나라의 휘종(徽宗)이 보낸 신악기 가운데는 특종이 없습니다. 『세종실록』 12년(1430년) 3월 5일에 나오는 특종은 당시에는 ‘가종(歌鐘)’이라고 했지요. 그러다 성종 때 이 타악기를 비로소 ‘특종’이라고 불렀습니다. 길이가 62cm, 밑 부분의 지름이 29.3cm인 종 하나를 틀에 매달아 놓은 것인데, 이 종은 편종의 종보다 두 배나 큽니다. 특종은 동철과 납철을 화합하여 주조하지요. 특종의 음은 12율(律)의 기본음인 황종(黃鍾)입니다. 오늘날 특종은 종묘제향(宗廟祭享)에서 제례악이 시작할 때만 연주됩니다. 박(..

단소와의 병조가 아름다운 국악기 양금

국악기 가운데 양금(洋琴)은 18세기 영조 때 유럽에서 청나라를 통해 들어 온 악기입니다. ‘구라철사금(歐邏鐵絲琴)’ 또는 ‘구라철현금(歐邏鐵絃琴)’이라고도 하며, 주로 민간의 정악 연주에 쓰였습니다. 사다리꼴 상자 위에 2개의 긴 괘를 세로로 질러 고정시키고, 괘 위에 14벌의 금속 줄을 가로로 얹은 다음, 대나무를 깎아 만든 가는 채로 줄을 쳐서 맑은 금속성의 소리를 내지요. 몸통은 오동나무판으로 만들며, 줄은 주석과 철의 합금으로 만듭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에 양금에 대한 기록이 나오며, 이규경의 『구라철사금자보(歐邏鐵絲琴字譜)』에도 양금에 대한 소개가 실려 있습니다. 풍류 악기인 양금은 18세기부터 줄풍류와 가곡, 시조 따위의 노래 반주에 쓰였고, 궁중무용인 ‘학연화대처용무합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