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아름다운 우리문화 산책(김영조) 142

<농부가>를 부르며 혹독한 삶을 이겨낸 농부들

우리 민요 가운데 가 있지요. 노랫말은 부르는 이에 따라 다양한데 “어~~화 농부님 서마지기 논빼미가 반달만큼 남았네. 니가 무슨 반달이야 초생달이 반달이로다”라는 노래는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아마도 이 를 불렀던 이는 수령이나 양반들에게 다 빼앗기고 논이 반달만큼 남았었나 봅니다. 얼마나 착취를 당했으면 농사지을 땅이 반달만큼 남았는지 기가 막힐 일이겠지만 그래도 농부는 노래 한 토막으로 마음을 달랩니다. 그런가 하면 이런 노랫말도 있습니다. “어화~어화 여어루 상~사~듸이여 우리남원 사판이다 어이하여 사판인고 부귀와 임금은 농판이요 장천태수는 두판이요. 육방관속은 먹을판 났으니 우리 백성들 죽을판이로다.” 여기서 ‘사판’이란 死板, 곧 ‘죽을 판국’을 말합니다. 흔히 “이판사판이다”라고 할 때 쓰는 ..

돌로 만든 악기, 편경을 아십니까?

편경(編磬)은 고려 예종 11년(1116년)에 중국에서 편종과 함께 들어와 궁중제례악에서 사용된 악기입니다. 처음에는 편경을 만들 돌이 없어서 중국에서 수입해서 만들거나, 흙을 구워서 만든 와경(瓦磬)을 편경 대신 썼습니다. 그러다 조선 세종 7년(1425년) 경기도 남양에서 경석(磬石)이 발견되어 세종 9년(1427년) 12매짜리 편경 한 틀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편경은 습도나 온도의 변화에도 음색과 음정이 변하지 않아 모든 국악기를 조율할 때 표준이 됩니다. 『세종실록』에 나오는 편경은 12개로 편성되었지만 성종 때 쓰인 편경은 16매짜리였고, 이후로 지금까지 16매를 씁니다. ㄱ자 모양으로 만든 16개의 경석을 음높이 순서대로 위·아래 두 단에 8개씩 붉은 노끈으로 매다는데, 경석..

취타대를 화려하게 하는 운라

덕수궁 정문인 대한문이나 경복궁 정문 광화문 앞에 가면 수문장 교대식을 보게 됩니다. 그때 취타대가 연주하는 악기 가운데 ‘운라(雲鑼)’가 있습니다. ‘구운라(九雲鑼)’ 또는 ‘운오(雲璈)’라고도 하며, 둥근 접시 모양의 작은 징(小鑼) 10개를 나무틀에 달아매고 작은 나무망치로 치는 악기입니다. 틀(架子) 아래에 자루가 달린 것과 방대(方臺)가 붙은 것이 있는데, 길을 행진하면서 연주하는 행악(行樂) 때에는 자루를 왼손으로 잡고 치며, 고정된 위치에서 연주할 때에는 대받침(방대)에 꽂아놓고 치게 되어 있지요. 징의 지름은 10개가 모두 같으나, 두께에 따라 얇으면 낮은 음이 나고 두꺼워질수록 높은 소리가 납니다. 운라는 3개씩 3열로 배열하되 하나는 가운데 열 맨 위에 놓입니다. 운라는 조선 후기부터 ..

기생의 가냘픈 기다림을 노래한 가곡 <바람은>

바람은 자동치듯 불고 구진비는 붓듯이 온다 / 눈 정에 거룬 님을 오늘 밤에 서로 만나자 허고 / 판첩처서 맹서 받았더니 / 이 풍우 중에 제 어이 오리 / 진실로 오기 곧 오랑이면 연분인가 하노라. 여창가곡 우조 우락(羽樂) 의 가사입니다. 여창가곡 가운데 가장 많이 불리는 노래지요. 이 노래의 주인공은 아마도 기생인 듯한데 임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심정이 잘 드러납니다. 주인공은 “아무리 맹세하고 약속했지만 이 폭풍우 중에 과연 임이 올까?“라고 걱정하면서도 만일 온다면 우리는 진정 인연일 것이라며 가냘프게 노래합니다. 이 노래를 한 기생은 과연 그날 밤 꿈같은 만남을 이루었을까요? 가곡은 시조의 시를 5장 형식에 얹어서 부르는 노래로, 피리·젓대(대금)·가야금·거문고·해금의 관현악 반주와 함께하는 한..

스트라디바리우스보다 150년이나 앞선 탁영 거문고

조선 중기 사대부 화가 낙파(駱坡) 이경윤(李慶胤)의 를 보면 한 남자가 달을 보며 무심하게 거문고를 탑니다. 그런데 이 거문고는 줄이 없는 무현금(無絃琴)입니다. 중국의 도연명은 음악을 모르면서도 무현금 하나를 마련해 두고 항상 어루만지며 ‘거문고의 흥취만 알면 되지 어찌 줄을 퉁겨 소리를 내야 하랴’라고 했다지요. 옛 선비들은 마음을 닦기 위해서 거문고를 연주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줄이 없어도 괜찮았던가 봅니다. 아! 이 오동은 나를 저버리지 않았으니 서로 기다린 게 아니라면 누구를 위해 나왔으리오. 현재 전해지는 거문고 가운데 가장 외래되었다는 ‘탁영거문고’에 새겨진 시입니다. 탁영거문고는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이 27세였던 성종 21년(1498년)에 34세의 나이로 능지처참을 당했지만 영원히..

이도령이 춘향이를 그리면서 읽은 어뚱한 천자문

오메불망 우리 사랑 규중심처 감출 ‘장’, 부용작약의 세우 중에 왕안옥태 부를 ‘윤’, 저러한 고운태도 일생 보아도 남을 ‘여’, 이 몸이 훨훨 날아 천사만사 이룰 ‘성’, 이리저리 노니다가 부지세월 해 ‘세’, 조강지처는 박대 못 허느니 대전통편의 법중 ‘율’, 춘향과 날과 단둘이 앉어 법중 ‘여’, 자로 놀아보자. 김세종제 사설 가운데 ‘천자 뒤풀이’ 대목입니다. 원래 『천자문(千字文)』은 중국 양(梁)나라 때 주흥사(周興嗣)가 1구 4자로 250구, 모두 1,000자로 지은 책이지요. 하룻밤 사이에 이 글을 만들고 머리가 허옇게 세었다고 하여 ‘백수문(白首文)’이라고도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한자(漢字)를 배우는 입문서로 널리 쓰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천자문이 나왔는데 특히 석봉 한호..

거문고 명인 백아는 왜 거문고 줄을 끊었을까?

거문고 타던 백아는 그 소리를 제대로 알아듣는 종자기가 죽고 나자 세상이 텅 빈 듯하여 이제 다 끝났다 싶어서 허리춤의 단도를 꺼내어 거문고 다섯줄을 북북 끊어버리고 거문고 판은 팍팍 뽀개 아궁이의 활활 타는 불길 속에 처넣어 버리고 이렇게 물었겠지. ‘네 속이 시원하냐?’ / ‘그렇고말고.’ / ‘울고 싶으냐?’ / ‘울고 싶고말고.’ - 신호열·김명호 옮김, 『연암집』 연암 박지원(朴趾源)이 안의 현감으로 있을 때 한양 벗들의 안부를 묻는 편지 일부입니다. 특히 이덕무(李德懋)가 죽고 나서 백아처럼 홀로 남은 박제가(朴齊家)가 걱정이 되어 쓴 것입니다.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알아주는 친한 벗이 죽었을 때 백아(중국 춘추시대 거문고 명인)의 심정 같은 박제가의 심정을 박지원은 마치 곁에서 본 듯 절묘하..

양반을 거침없이 비꼬는 말뚝이

“이놈 말뚝아! 이놈 말뚝아! 이놈 말뚝아!” “예에에. 이 제미를 붙을 양반인지 좆반인지 허리 꺾어 절반인지 개다리 소반인지 꾸레 이전에 백반인지 말뚝아 꼴뚝아 밭 가운데 쇠뚝아 오뉴월에 말뚝아 잔대뚝에 메뚝아 부러진 다리 절뚝아 호도엿 장사 오는데 할애비 찾듯 왜 이리 찾소?” 한국 전통탈춤의 하나인 봉산탈춤 제6과장 에서 양반이 말뚝이를 찾자 말뚝이가 양반들을 조롱하는 사설입니다. 옛날 양반이나 벼슬아치들이 타는 말을 다루는 사람을 말구종이라 했고, 이들이 머리에 쓰는 것을 말뚝벙거지라 했습니다. 말구종이 말뚝벙거지를 썼다 해서 ‘말뚝이’라고 부른 듯합니다. 한국 탈춤에서 가장 중요한 배역을 말하라면 당연히 말뚝이입니다. 말뚝이는 소외받던 백성의 대변자로 나서서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대사로 양반을 거..

옛 선비들이 운율을 붙여 책을 읽던 송서

신수이후(身修而后)에 가제(家劑)하고 가제이후(家劑而后)에 국치(國治)하고 국치이후(國治而后)에 천하평(天下平)이니라. 자천자이지어서인(自天子以至於庶人)히 일시개이수신위본(壹是皆以修身爲本)이니라. (자기가 수행된 이후에 가정이 다스려지고, 가정이 다스려진 뒤에 나라가 다스려지고 나라가 다스려진 뒤에야 천하가 태평해지느니라. 천자부터 모든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 한결같이 수신을 근본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니라.) 유교 경전인 『대학(大學)』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옛 선비들은 이와 같이 한문으로 된 책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단순히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외워야만 과거시험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려운 한문 문장을 그저 읽으면 따분하고 졸리므로, 선비들은 글에 운율을 붙여 읽었습니다. 그래서 그 많은 ..

남창가곡 편락, <나무도>를 들어보셨나요?

우리나라 전통성악곡인 가곡(歌曲)에는 남자가 부르는 남창가곡과 여성이 부르는 여성가곡이 있습니다. 또한 우조(羽調)와 계면조(界面調)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우조는 밝고 힘이 있으며 활기찬 느낌의 가락이고, 계면조는 조금 어둡고 잔잔한 서정이 느껴지는 곡입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자신의 마음을 닦기 위해 했다는 남창가곡은 정말 담백하면서도 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심연의 소리입니다. 그런데 남창가곡 가운데 반우반계 편락(編樂) 를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우조로 시작해서 중간쯤 계면조로 바뀌게 되어서 ‘반우반계(半羽半界)’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사설을 가만히 들어보면 나무도 바위도 없는, 곧 숨을 곳이라고는 전혀 없는 산에서 매에게 쫓기는 까투리의 심정을 노래합니다. 그리곤 큰 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