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117

(얼레빗 4388호) 숲속에 홀로 앉아 발을 씻는 노승

옛사람들은 불볕더위 속에서도 쉽게 물속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옷을 훌렁훌렁 벗어 던질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겨우 물에 발을 담그는 ‘탁족(濯足)’입니다. 이 탁족을 주제로 한 이경윤의 ‘고사탁족도’(高士濯足圖, 국립중앙박물관)는 유명한 그림입니다. 그런데 여기 노승이 등장하는 조영석(趙榮祏, 1686~1761)의 ‘노승탁족도(老僧濯足圖, 국립중앙박물관)도 있습니다. ▲ 조영석(趙榮祏)의 ‘노승탁족도’, 18세기, 비단에 담채, 14.7 × 29.8cm, 국립중앙박물관 숲속 한 모퉁이 계곡에서 시내는 콸콸 흐릅니다. 냇가에 고즈넉이 앉은 늙은 스님은 허벅지까지 바지를 올리고 물에 발을 담근 채 더위를 식힙니다. 그림 왼쪽을 보면 ‘종보(宗甫)’라는 글씨가 쓰여있고, ‘종보(宗甫)’라는 도장..

(얼레빗 4386호) 상서로운 동물이 새겨진 황남대총 은잔

서울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보물 제627호 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은잔(銀盞)은 경주시 황남동 미추왕릉 지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무덤인 황남대총 북쪽 무덤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잔의 크기는 높이 3.5㎝, 아가리 지름 7㎝인데 아가리에 좁은 띠를 두른 뒤, 연꽃을 겹으로 촘촘하게 돌려 꾸미고, 그 밑으로는 쌍선으로 거북등무늬를 연속해서 장식하였으며, 거북등 안에는 각종 상상 속의 동물 형상을 도들새김으로[打出] 새겼습니다. ▲ 보물 제627호 , 국립중앙박물관 은잔에 육각무늬를 구획하고 내부에 상서로운 동물 형상을 배치하는 방식은 서아시아에서 비롯되어 실크로드를 통해 동쪽으로 전파되었으며, 중국 남북조시대를 거쳐 우리나라 삼국시대에 유입된 것으로 봅니다. 잔에 새긴 상서로운 동물들을 보면 날개를..

(얼레빗 4379호) 조선시대 양반은 어떤 신발을 신었을까?

조선시대 사람들은 바지저고리와 치마, 배자와 두루마기 같은 한복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신은 무얼 신었을까요? 물론 백성이야 짚신과 마로 삼은 미투리(麻鞋)를 신었지만, 양반들이 신는 신으로는 목이 긴 ‘화(靴)’와 목이 짧은 ‘이(履)’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화보다 더 많이 신었던 ‘이(履)’에는 태사혜, 당혜, 운혜, 흑피혜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먼저 태사혜(太史鞋)는 코와 뒤에 태사라 하는 흰 줄무늬를 새긴 남자용 신입니다. 흔히 사대부나 양반계급의 나이 많은 사람이 평상시에 신었는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는 고종이 신었다는 태사혜 한 켤레가 있지요. 조선 말기에 와서는 임금도 웅피혜(熊皮鞋, 곰가죽 신)나 녹피혜(鹿皮鞋, 사슴가죽 신) 아닌 태사혜를 신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문무백관들이..

(얼레빗 4373호) 백사 이항복의 가르침, 나오고 물러감의 철학

在郊那似在家肥(재교나사재가비) 교외에 있는 것이 어찌 집에서 살찌는 것만 하겠냐고 人笑冥鴻作計非(인소명홍작계비) 사람들이 기러기 세운 계획 잘못됐다 비웃지만 莫把去留論得失(막파거류론득실) 가고 머무름으로 얻고 잃음을 말하지 말라 江南水闊網羅稀(강남수활망라희) 강남에는 물이 넓고 그물도 드물다네 ▲ , 비단에 색, 156.3✕86.2cm, 국립중앙박물관 이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이 지은 ‘영정안(詠庭雁)’ 곧 “뜰의 기러기를 노래함”이라는 한시로, 벼슬에서 물러나 숨어 사는 것이 더 슬기롭다는 것을 기러기에 비유하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백사는 말합니다. 들판에 있는 것이 어찌 집에서 뒹굴뒹굴 살찌는 것만 하겠냐고 또 사람들이 기러기 세운 계획이 잘못됐다고 비웃지만, 나..

(얼레빗 4369호) 억울하게 죽은 귀신을 위한 감로도(甘露圖)

"백성들이 불행하게도 거듭 흉년을 만난 데다가 돌림병까지 겹쳐서 이곳저곳 떠돌아다니고 몹시 가난하여 잇따라 죽고 있으니, 이것만도 매우 참혹하고 불쌍하다. 그런데 또 제 때에 주검을 묻지 못하여 주검과 뼈가 도로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니, 족히 화창한 기운을 침해하여 재앙을 초래할 만하다. 고요히 그 허물을 생각하면 내 실로 부끄럽고 마음 아프다." 《순조실록》 34년 1월 24일의 기록으로 흉년에 돌림병까지 겹쳐 많은 백성이 죽어가고 그 주검이 길거리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처참한 상황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조선시대에는 돌림병이 돌아 많은 사람이 죽게 되면 조정에서는 한성과 지방에 여제단(癘祭壇)을 설치해 돌림병을 일으키는 귀신을 달래거나 병에 걸린 사람들을 피막에 수용, 격리하고, 돌림병이 지나..

(얼레빗 4367호) 특이하게 몸돌이 공 모양인 “홍법국사탑”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흔한 모습이 아닌 독특한 모양의 석탑이 있는데 바로 국보 제102호 충주 정토사터 “홍법국사탑(弘法國師塔)”이 그것입니다. 흔히 석탑의 몸돌들을 보면 네모난 모양인데 견주어 약간 찌그러진 공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공모양의 몸돌로 인해 ‘알독’이라고 불리기도 한 이 탑은 새로운 기법을 보여주는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승탑입니다. ▲ 국보 제102호 충주 정토사터 “홍법국사탑(弘法國師塔)”, 국립중앙박물관 등근 몸돌에는 가로ㆍ세로로 묶은 듯한 십(十)자형의 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그 교차점에는 꽃무늬로 꾸몄습니다. 또 삿갓 모양으로 깊숙이 패인 지붕돌 밑면에는 비천상(飛天像)이 조각되어 있지요. 그뿐만이 아니라 가운데받침돌에는 구름을 타고 있는 용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고, 윗받..

(얼레빗 4363호) 추사, 죽은 아내에게 반찬 투정

那將月姥訟冥司(나장월모송명사) 월하노인과 함께 가 옥황상제에게 하소연하여 來世夫妻易地爲(내세부처역지위) 내세에는 내외가 처지를 바꾸어서 我死君生千里外(아사군생천리외) 나 죽고 그대는 천 리 밖에 살아남아 使君知我此心悲(사군지아차심비) 그대가 나의 이 슬픔을 알게 할까? 이는 추사 김정희의 곧 ‘죽은 아내를 생각하여 슬퍼함’이라는 한시입니다. 추사가 제주도로 유배를 가 있는 사이 그의 나이 57살인 1842년 11월 13일 본가 예산(禮山)에서 아내 예안 이씨가 죽었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는 추사는 계속 아내에게 편지를 썼지요. 그 가운데는 특히 제주도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며, 젓갈 등을 보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전해지는 추사의 한글편지는 40통인데 그 가운데 대부분이 아내에게 쓴 것이라..

(얼레빗 4350호) 매화ㆍ새ㆍ대나무 무늬의 상감매죽학문 매병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보물 제1168호 “청자 상감매죽학문 매병”이 있는데 높이 33.0㎝, 입지름 5.2㎝, 밑지름 11.0㎝의 크기입니다. 각이 져 세워진 아가리와 짧은 목, 그리고 어깨에서부터 풍만하게 벌어지다가 배의 아래쪽에서부터 서서히 좁아져 내려가 병의 아랫부분에서 다시 벌어진, 12세기 후반에 빚은 것으로 고려시대의 전형적인 매병입니다. ▲ 보물 제1168호 “청자 상감매죽학문 매병”, 국립중앙박물관 매병 앞뒤에 대칭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가늘고 길게 세워진 매화와 대나무가, 그리고 그 사이에는 역시 대칭으로 위에서 내려오거나, 위로 올라가거나, 땅 위에 서 있는 3마리의 학들이 흑백상감으로 섬세하고 회화적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잿물빛깔은 담청록색(淡靑綠色)으로 전면에 고르게 시유되었으며, 기면..

(얼레빗 4344호) 윤두서 자화상은 왜 귀ㆍ목 등이 없을까?

국보 제240호, 윤두서 자화상은 수염 한 올 한 올 세밀하게 일일이 그린 필치가 인상적이며, 감상자를 강렬하게 바라보는 모습의 초상화로 조선의 초상화 가운데서 획기적인 명작이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은 있어야 할 두 귀, 목과 윗몸이 없는 괴기한 모습이어서 사람들..

(얼레빗 4302호) 상상 속 동물 형상, 청자 비룡모양 주전자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상상 속의 동물을 형상화한 국보 제61호 ‘청자 비룡모양 주전자’가 있습니다. 머리는 용, 몸통은 물고기의 형상으로 이러한 동물을 어룡(魚龍)이라 하는데, 이 주전자는 지느러미가 날개처럼 확대되고 꼬리 부분이 치켜세워져 마치 물을 박차고 뛰어오르는 모습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