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벗에게 사람들이 싫다는 말 믿을 사람 아무도 없다는 말 너무 자주 하진 말아요 일단은 믿어야만 믿음도 생긴다니까요 다 귀찮아 무인도에나 가서 혼자 살고 싶다는 말도 함부로 하진 말아요 사람들이 없는 곳에 가는 즉시 사람들이 그리워질 거예요 세상은 역시 사람들이 있어 아름다운 걸 다.. 지난 게시판/이해인시집(작은기쁨) 2019.06.03
그리운 추위 장갑을 끼어도 손이 시린 겨울 털양말 신어도 발이 시린 겨울 동상 걸린 발로 괴로워해도 겨울은 나를 강하게 했다 힘든 것을 견뎌내는 지혜를 주었다 추위가 없는 겨울엔 추위가 그립다 나의 삶에서 탄력을 앗아가는 편리하고 편안한 겨울을 문득 원망해보는 오늘 지난 게시판/이해인시집(작은기쁨) 2019.05.29
사별일기 1 엄마가 떠나신 뒤 나의 치통도 더 심해졌다 무엇을 먹어도 맛을 모르겠고 아프기만 하다 엄마가 떠나신 뒤 골다공증도 더 심해졌다 구멍 난 뼈에 바람만 가득하고 조금 남은 기쁨의 양분도 다 빠져나갔다 그러나 더 두려운 아픔은 다른 사람들이 눈에 안 보이는 것 예쁘던 삶이 갑자기 .. 지난 게시판/이해인시집(작은기쁨) 2019.05.28
어떤 결심 하나 내 사랑하는 이들의 외딴 무덤가에 풀들이 자라는 동안 나는 더 많이 사랑해야겠다고 마음을 모읍니다 그들이 못다 한 사랑까지 다 하고 가려면 한 순간도 미움을 허락해선 안 됩니다 눈만 뜨면 할 수 있는 조그만 사랑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내 사랑하는 이들의 동그란 무덤가에 바.. 지난 게시판/이해인시집(작은기쁨) 2019.05.24
만남일기 내 어린 시절 친구와 어린 시절 이야기하며 함께 웃고 함께 웃으니 행복하다 추억의 안개꽃 마음 안에 가득하다 만남의 악수를 하는 우리의 두 손에서 풍금 소리가 들려오네 '언제 또 만나지?' 사진을 찍고 헤어지는데 빨간 동백꽃 한 송이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 지난 게시판/이해인시집(작은기쁨) 2019.05.23
내가 아플 때는 1 어느 날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 병원에 가니 의사가 말했다 '곧 괜찮아질 겁니다 다 지나갑니다' 약 한 봉지 먹고 나서 성가신 가려움증을 달래며 내가 나에게 말해준다 '곧 괜찮아질 거야 다 지나간다니까' 그러나 지나가는 것 기다리기 왜 이리 힘든지 순간순간 견뎌내기 왜 이리 지루.. 지난 게시판/이해인시집(작은기쁨) 2019.05.22
맛있는 기도 내 맘속에 숨어 살며 떠나기 싫어하는 어떤 슬픔 하나를 과자로 만들어 기도 속에 넣어둡니다 내가 좋아하는 웨하스, 크래커처럼 바삭바삭 담백하고 맛이 고소해요 내 마음에 안 들어 비켜가고 싶던 어떤 미움 하나 음료수로 만들어 기도 속에 넣어둡니다 내가 좋아하는 레몬즙처럼 쌉싸.. 지난 게시판/이해인시집(작은기쁨) 2019.05.21
글자놀이 오늘은 일을 쉬고 책 속의 글자들과 놉니다 글자들은 내게 와서 위로의 꽃으로 향기를 풀어내고 슬픔의 풀로 흐느껴 울면서 사랑을 원합니다 내 가슴에 고요히 안기고 싶어합니다 책 속의 글자들도 때론 외롭고 그래서 사랑이 필요하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너무 바쁘지 않게 너무.. 지난 게시판/이해인시집(작은기쁨) 2019.05.20
판단 보류 불볕더위 속에도 어느 순간 불어오는 바람 한 줄기에 "아, 시원하다!" 감탄하며 즐거워하지요 시원하게 비 내리는 날에도 습기가 가득하여 "아 답답하다!" 하며 부채를 찾는 적이 있지요 사람들도 그러해요 까다롭고 별나다고 소문난 사람에게도 의외로 너그러운 구석이 있는가 하면 착하.. 지난 게시판/이해인시집(작은기쁨) 2019.05.17
사랑의 의무 내가 가장 많이 사랑하는 당신이 가장 많이 나를 아프게 하네요 보이지 않게 서로 어긋나 고통스런 몸 안의 뼈들처럼 우린 왜 이리 다르게 어긋나는지 그래도 맞추도록 애를 써야죠 당신을 사랑해야죠 나의 그리움은 깨어진 항아리 물을 담을 수 없는 안타까움에 엎디어 웁니다 너무 오.. 지난 게시판/이해인시집(작은기쁨) 2019.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