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117

조선에서 가장 아름다운 초상화를 보셨나요?

조선 후기 초상화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걸작, 보물 제1483호 을 보셨나요? 비단 바탕에 채색한 그림으로 세로 99.2cm, 가로 58cm이며,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초상화는 이채가 지체 높은 선비들이 입던 무색 심의深衣를 입고 중층 정자관程子冠을 쓴 뒤 두 손을 마주 잡은 채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반신상입니다. 그런데 을 비롯한 조선의 초상화는 극사실화極寫實畵와 전신사조傳神寫照로 그렸지요. 먼저 이 초상에서 이채의 눈매를 보면 홍채까지 정밀하게 묘사되어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것은 물론, 왼쪽 눈썹 아래에는 검버섯이 선명하게 보이며, 눈꼬리 아래에는 노인성 지방종까지 보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살을 파고 나온 수염을 하나하나 세밀히 그렸으며, 오방색 술띠를 한 올 한 올 거의 ‘죽기 살기..

마음속에 102개 벼루를 품은 부자 조희룡

추사 김정희를 50년 동안 스승으로 모시고 글씨와 그림을 배운 우봉又峰 조희룡趙熙龍은 중인 출신 화원이었습니다. 그는 벼루를 극진히 사랑했던 사람이지요. 자신의 서재 이름도 ‘102개의 벼루가 있는 시골집’이라는 뜻으로 ‘백이연전전려百二硯田田廬’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조희룡이 벼루를 좋아했던 것은 쉽게 뜨거워졌다가 쉽게 차가워지는 염량세태炎涼世態 속에서 벼루는 언제나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벼루는 군자를 가까이하고 소인을 멀리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그렇게 아끼던 벼루도 그가 유배에서 풀려나 돌아왔을 때는 모두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하지만 눈앞에 벼루가 남아 있지 않았어도, 그는 매화가 활짝 필 때면 그토록 아끼던 벼루를 꺼내 여전히 먹을 갈았지요. 평생 마음속에 담아둔 벼루는 그대로 남..

빗에 이를 그려 넣은 김명국

김명국은 화가다. 그의 그림은 옛것을 배우지 않고 오로지 마음에서 얻은 것이었다. 인조 때 조정에서 머리에 필요한 빗, 빗솔, 빗치개 같은 것을 넣어두는 화장구인 빗접을 노란 비단으로 만들어주면서 명국에게 거기에 그림을 그리라고 했다. 그가 열흘 뒤에 바쳤는데 그림이 없었다. 인조는 노해 그를 벌주려 했다. 그러자 명국이 말했다. “정말 그렸사옵니다. 나중에 자연히 아시게 될 것이옵니다.” 어느 날 공주가 새벽에 머리를 빗는데 이 두 마리가 빗 끝에 매달려 있었다. 손톱으로 눌러도 죽지 않아 자세히 보니 그림이었다. 조선 후기 문신 남유용南有容의 『뇌연집雷淵集』에 실린 화원 김명국에 대한 글입니다. 빗접에 그린 그림이 아마도 세심히 보지 않으면 눈에 뜨지 않을만큼 실물크기인 데다가 극사실화였나 봅니다. ..

서양에는 고흐, 동양에는 천재화가 최북

“저런 고얀 환쟁이를 봤나. 그림을 내놓지 않으면 네놈을 끌고 가 주리를 틀 것이야.” “낯짝에 똥을 뿌릴까보다. 너 같은 놈이 이 최북을 저버리느니 차라리 내 눈이 나를 저버리는 것이 낫겠다.” 최북이 침을 퇴퇴 뱉고는 필통에서 송곳을 들고 나왔다. 그러고는 양반 앞에서 송곳으로 눈 하나를 팍 찌르는 것이 아닌가. 금세 눈에서는 피가 뻗쳤다. 비로소 그가 놀라 말에 오르지도 못한 채 줄행랑을 쳤다. 민병삼 장편소설 『칠칠 최북』에 나오는 대목인데 최북이 왜 애꾸가 되었는지를 잘 그려주고 있습니다. 지난 2012년은 탁월한 그림으로 양반과 세상에 맞섰던 천재화가 최북이 태어난 지 300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이를 기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최북 탄신 300주년 기념전시’를 열었지요. 최북이 그린 산수화와 ..

(얼레빗 4683호) 화원의 별명 최메추라기, 변고양이, 남나비

조선시대 화원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괴짜 화원은 아마 최북(崔北, 1720~죽은 해 모름)일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 북(北) 자를 반으로 잘라서 ‘칠칠(七七)’을 자(字, 어른이 되어 붙이는 또 다른 이름)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그를 "여보게, 칠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하지요. 그런데도 스스로 자로 삼았다니 괴짜 화원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최북한테는 ‘최메추라기', '최산수' 등의 별명이 있지요. '최메추라기'는 그의 메추라기 그림에는 따라올 사람이 없어서 붙은 별명이고, 역시 '최산수'라는 별명은 그가 산수화를 잘 그렸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품인 〈메추라기> 그림은 유명한 작품입니다. 최북은 어떤 힘 있는 이가가 와서 그림을 그려달라고 윽박지르자 차라..

<농부가>를 부르며 혹독한 삶을 이겨낸 농부들

우리 민요 가운데 가 있지요. 노랫말은 부르는 이에 따라 다양한데 “어~~화 농부님 서마지기 논빼미가 반달만큼 남았네. 니가 무슨 반달이야 초생달이 반달이로다”라는 노래는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아마도 이 를 불렀던 이는 수령이나 양반들에게 다 빼앗기고 논이 반달만큼 남았었나 봅니다. 얼마나 착취를 당했으면 농사지을 땅이 반달만큼 남았는지 기가 막힐 일이겠지만 그래도 농부는 노래 한 토막으로 마음을 달랩니다. 그런가 하면 이런 노랫말도 있습니다. “어화~어화 여어루 상~사~듸이여 우리남원 사판이다 어이하여 사판인고 부귀와 임금은 농판이요 장천태수는 두판이요. 육방관속은 먹을판 났으니 우리 백성들 죽을판이로다.” 여기서 ‘사판’이란 死板, 곧 ‘죽을 판국’을 말합니다. 흔히 “이판사판이다”라고 할 때 쓰는 ..

일반우표 발행

2021년 9월 1일부터 우편요금이 조정되면서 통상우편 기본요금은 430원, 통상우편 규격 외 요금은 520원, 등기우편 기본요금은 2,530원으로 각각 50원씩 인상됩니다. 이에 따라 우정사업본부는 새로운 디자인의 일반우표 3종(430원, 520원, 2530원)을 발행합니다. 통상우편 기본요금 430원 우표에서는 대한민국의 상징인 ‘태극 문양’과 ‘훈민정음’을 볼 수 있습니다. 백성들이 한자를 배워 사용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한 조선의 제4대 왕 세종은 1443년에 우리말 표기에 알맞은 문자를 완성하고 ‘백성을 가르치는 올바른 소리’란 뜻으로 ‘훈민정음’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훈민정음의 해설서인 ‘해례본’은 세종 28년(1446)에 반포되었으며, 우표에는 단어 표기 용례를 보인 ‘용자례(用字例)’..

(얼레빗 4661호) 오늘은 말복, 옛사람들의 더위 정복하기

오늘은 복날의 마지막 말복(末伏)입니다. 올해는 초복과 중복이 열흘 만에 온 것과 달리 중복과 말복은 스무날(20일) 차이인데 이를 우리는 월복(越伏)이라고 합니다. 1614년 이수광이 펴낸 한국 최초의 백과사전적인 책 《지봉유설(芝峰類說)》에 보면 복날을 '양기에 눌려 음기가 바닥에 엎드려 있는 날'이라고 함으로써 사람들이 더위에 지쳐있을 때라고 하였습니다. ‘음양오행’에 따르면 여름철은 '화(火)'의 기운, 가을철은 '금(金)'의 기운인데 가을의 '금‘ 기운이 땅으로 나오려다가 아직 '화'의 기운이 강렬하므로 일어서지 못하고, 엎드려 복종하는 때라고 합니다. 그래서 엎드릴 '복(伏)'자를 써서 '초복, 중복, 말복'이라고 하지요. 또 최남선이 쓴 《조선상식(朝鮮常識)》에는 복날을 '서기제복(暑氣制伏)..

(얼레빗 4646호) 추사, 여름날 북한산 올라 순수비 탁본 떠

순조 16년(1816년) 7월 된더위가 숨을 헐떡거리게 하는 뜨거운 여름날이었습니다. 금석학과 고증학에 한창 심취하고 있던 31살의 추사 김정희는 동무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 꼭대기에 있는 수수께끼의 옛 비석을 조사ㆍ판독하기 위하여 가파른 암벽을 기어 올라갔지요. 그동안 이 빗돌은 조선 초 태조의 왕사 무학대사와 관련이 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끼 속의 비문을 짚어 나가다가 깜짝 놀라게 됩니다. 비문 내용이 무학대사와 전혀 다른 1천 수백 년 전 신라 진흥왕의 순수비임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 국보 제3호 , 국립중앙박물관 추사는 빗돌을 확인하고 얼마나 기뻤던지 빗돌 옆에 “이것은 신라 진흥대왕 순수비다. 병자년 7월 김정희와 김경연이 와서 읽어보았다.”라는 발문을 쓰고 내려옵니..

(얼레빗 4634호) 김홍도의 ‘씨름도’, 씨름꾼 어디로 넘어지나

여기 단원 김홍도의 그림 ‘씨름도’가 있습니다. 두 사람 가운데 오른쪽 사람은 입을 꽉 깨물었으며, 광대뼈가 툭 튀어나왔고 두 다리를 떠억 버티고 선 모양새를 보면 이번엔 이기겠다는 단단한 각오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면에 왼쪽에 번쩍 들린 사람의 표정을 보면 눈을 똥그랗게 뜨고, 양미간 사이엔 깊은 주름이 잡혀 있으며, 눈빛은 쩔쩔매는 듯 너무나 처절합니다. 더구나 한쪽 다리는 번쩍 들려있어서 이 사람이 분명히 질 것이라고 우리는 짐작을 해볼 수 있습니다. ▲ 보물 527호 ‘씨름(단원 풍속도첩)’, 김홍도, 26.9cm×22.2cm, 국립중앙박물관 그런데 이 그림에서 왼쪽 사람이 넘어진다면 과연 어느 쪽으로 넘어질까요? 자세히 보면 왼쪽 사람들은 느긋하게 구경을 하고 있는데, 반해 오른쪽 아래 구경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