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117

일본 고류사 미륵상, 일본인의 얼굴

일본 고류사 미륵상, 일본인의 얼굴 지그시 감은 눈과 입가에 감도는 미소를 보면 그것은 바야흐로 법열法悅을 느끼는 듯 성스럽고 신비스러워 보인다. 아! 어쩌면 저렇게도 평온한 모습일 수 있을까. 몸에 어떤 장식도 가하지 않은 나신裸身이다. 우리의 국보 83호 금동미륵반가상만 해도 목덜미에 둥근 옷주름을 표현해서 법의法衣가 몸에 밀착돼 있음을 암시하지만 이 불상에선 가슴 부분이 가벼운 볼륨감으로 드러나 있고 목에 세 가닥 목주름을 나타냈을 뿐이다. 이를 삼도三道라 한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일본편 3: 교토의 역사』에 나오는 일본 교토 고류사廣隆寺의 ‘목조미륵반가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미술사를 전공한 저자는 참으로 섬세하게도 미륵상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고류사 미륵상에 엄청난 ..

부끄러움으로 눈물 흘리는 백자 무릎 모양 연적

부끄러움으로 눈물 흘리는 백자 무릎 모양 연적 하늘 선녀가 어느 해 젖가슴 한쪽을 잃어버렸는데 天女何年一乳亡 오늘에 우연히 문방구점에 떨어졌다네 今日偶然落文房 나이어린 서생들이 앞다퉈 손으로 어루만지니 少年書生爭手撫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해 눈물만 주르륵 흘리네 不勝羞愧淚滂滂 이름 모를 한 시인이 쓴 연적에 관한 한시(漢詩)입니다. 원래 벼루에 물을 방울방울 떨어뜨리는 쓰임새로 썼던 연적을 선녀의 젖가슴으로 표현하고, 젊은 서생들의 손길에 부끄러워 눈물을 흘린다고 한 묘사가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백자 무릎 모양 연적’은 아무런 그림도, 무늬도 없는 그야말로 순백의 백자입니다. 그러나 백자 달항아리가 아무런 그림도 조각도 없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처럼, 이 백자 연적도 보는 이를..

연꽃 위에 앉은 거북이

연꽃 위에 앉은 거북이 푸른색 자기 술잔을 구워내 열에서 하나를 얻었네 선명하게 푸른 옥 빛나니 몇 번이나 짙은 연기 속에 묻혔었나 영롱하기 맑은 물을 닮고 단단하기 바위와 맞먹네 이제 알겠네 술잔 만든 솜씨는 하늘의 조화를 빌었나 보구려 가늘게 꽃 무늬를 점 찍었는데 묘하게 정성스런 그림 같구려 고려 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李奎報)는 청자를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 아름다운 청자 가운데 연꽃 위에 거북이가 앉아 있는 주전자가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국보 제96호 ‘청자 구룡형 주전자靑磁龜龍形注子’입니다. 고려청자의 전성기인 12세기 무렵에 만들어진 청자 주전자로, 크기는 높이 17cm, 밑지름 10.3cm지요. 얼굴 모습은 거북이라기보다 오히려 용에 가까운데, 그래서 ..

포도넝쿨 사이에서 원숭이는 신이 납니다.

포도넝쿨 사이에서 원숭이는 신이 납니다. 포도넝쿨 사이에서 원숭이가 노니는 그림의 도자기를 보셨나요? 국보 제93호 ‘백자 철화 포도원숭이 항아리白磁鐵畵葡萄猿文壺’가 그것입니다. 이 항아리는 붉은 빛이 나는 산화철로 포도와 원숭이무늬를 그려놓은 조선백자지요. 조선시대 원숭이 그림은 높은 벼슬을 바라는 마음과 부귀영화를 누리라는 뜻에서 그렸고, 포도는 다산을 뜻했습니다. 이 항아리는 포도 잎과 줄기를 사실적으로 그려놓았고, 넝쿨을 타고 노는 원숭이는 활달하고 세련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이 그림은 도공(陶工)이 아니라 전문 화원이 그린 회화성이 짙은 그림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모양을 보면 입 부분은 넓고, 어깨에서 벌어져 몸통 위쪽에서 중심을 이루었다가 좁아져 세워진 단아한 모습을 하고 있지요. 또..

섬세한 조각이 아름다운 경천사 10층 석탑

섬세한 조각이 아름다운 경천사 10층 석탑 서울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에 들어서면 우람한 석탑이 천정을 찌를 듯한 자태로 서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도 박물관에 있을 것이 아닌 이 거대한 탑은 국보 제86호 ‘경천사 10층 석탑’입니다. 원래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중연리 부소산의 경천사敬天寺에 있던 탑으로, 고려 충목왕 4년(1348년)에 건립되었습니다. 『고려사』에 따르면 경천사는 고려 왕실의 제삿날에 종종 추모제를 지냈던 절입니다. 석탑의 1층 탑신석에 따르면 대시주 중대광 진녕부원군 강융姜融 등 여러 명이 왕실의 안녕과 국태민안, 일체 중생이 모두 성불하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1348년 3월에 조성한 것입니다. 경천사 석탑은 목조건축의 기둥과 공포, 난간과 현판이 잘 표현되어 있고, 기와가 정교하게 표현..

판소리 <수궁가>에 나오는 자라로 물병을?

판소리 에 나오는 자라로 물병을? 별주부 기가 막혀 “여보 토공! 여보 토공 간 좀 빨리 가지고 오시오.” 가든 토끼 돌아다보며 욕을 한번 퍼붓는디 “제기를 붙고 발기를 갈 녀석 뱃속에 달린 간을 어찌 내어드린단 말이냐.” 판소리 가운데 ‘토끼 세상 나오는 대목’입니다. 여기에 토끼한테 당하는 별주부가 바로 자라지요.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분청사기 박지 모란무늬 자라병粉靑沙器剝地牡丹文鐵彩甁’은 자라 모양의 낮고 넓적한 몸체와 위로 솟은 주둥이를 갖춘 병입니다. 주로 나들이할 때 술이나 물을 담아 가지고 다니던 것이지요. 납작하다고 하여 ‘편병扁甁’이라고도 부릅니다. 이 병은 전체를 백토로 두껍게 바르고, 윗면에는 모란꽃과 잎을 새겨 넣었지요. 그리고 무늬가 새겨진 곳 이외의 백토 면을 깎아낸 뒤 검은 ..

머리는 용, 몸통은 물고기 모양 청자 주전자

머리는 용, 몸통은 물고기 모양 청자 주전자 송나라 학자 태평노인太平老人은 고려청자에 반한 나머지 「수중금袖中錦」이라는 글에서 ‘고려비색 천하제일高麗翡色 天下第一’이라 적었다고 하지요. 그 비색 청자를 볼 수 있는 전시회가 지난 2013년 열렸는데, 당시 전시된 작품 가운데 국보 제61호 ‘청자 어룡 모양 주전자靑磁飛龍形注子’는 많은 관람객의 눈길을 끌었지요. 높이 24.4cm, 몸통지름 13.5cm인 이 주전자는 물고기 꼬리 모양을 한 뚜껑에 술을 붓고 용 주둥이로 술을 따르는 모양새입니다. 살아 있는 듯 섬세하게 만들어진 용의 머리에, 날아오를 듯한 물고기의 몸을 갖추고 있습니다. 용머리에 물고기 몸통을 한 상상의 동물을 ‘어룡魚龍’이라 부르는데, 힘차게 펼친 지느러미와 치켜세운 꼬리가 마치 물을 박..

따듯한 마음이 드러나는 공재 윤두서의 그림들

따듯한 마음이 드러나는 공재 윤두서의 그림들 해남 윤씨 문헌海南尹氏文獻 「공재공행장恭齋公行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그해 마침 해일海溢이 일어 바닷가 고을은 모두 곡식이 떠내려가고 텅 빈 들판은 벌겋게 황톳물로 물들어 있었다. 백포白浦는 바다에 닿아 있었기 때문에 그 재해災害가 특히 극심하였다. 인심이 매우 흉흉하게 되어 조석 간에 어떻게 될지 불안한 지경이었다. 관청에서 비록 구제책을 쓰기는 했으나 역시 실제로는 별다른 혜택이 없었다. 이에 공재 윤두서는 마을 사람들이 함께 산의 나무를 베어내서 소금을 구워 살길을 찾도록 해주었습니다. 한 마을 수백 호의 주민이 그의 도움을 받아 떠돌아다니거나 굶어 죽는 일이 없게 되었지요. 윤두서는 단순히 곡식을 나누어주는 것으로 가난한 이들을 구하는 도..

변상벽의 <묘작도>, 70세 노인에게 기쁜 소식을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죽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이장희의 시 「봄은 고양이로다」입니다. 따사로운 봄기운이 고양이의 눈과 입과 수염에 내려앉은 모습을 잘 그려냈습니다. 그런데 여기, 조금 다르지만 봄과 고양이를 그린 조선 후기 화가 변상벽의 그림이 있습니다. 라는 이 그림에서 참새를 쫓아 나무 위에 올라간 고양이 한 마리가 나무 아래에 있는 동무를 내려봅니다. 고양이의 털을 일일이 잔 붓질로 꼼꼼하게 묘사한 영모화翎毛畵지요. 는 봄기운이 물씬 나는 그림이지만 사실은 그림을 선물한 사람의 축원이 담겨 있습니다...

옥황상제도 홀린 금강산의 절경

옥황상제가 금강산의 경치를 돌아보고 구룡연 기슭에 이르렀을 때, 구룡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보고는 관冠을 벗어 놓고 물로 뛰어들었다. 그때 금강산을 지키는 산신령이 나타나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물에서 목욕을 하는 것은 큰 죄다”라고 말하고 옥황상제의 관을 가지고 사라졌다. 관을 빼앗긴 옥황상제는 세존봉 중턱에 맨머리로 굳어 바위가 되었다. 금강산에 전해지는 설화입니다. 금강산이 얼마나 절경이었으면 옥황상제마저 홀렸을까요? 심지어 중국인들조차 금강산에 가보는 게 소원이라 할 정도였지요. 『태종실록』 4년(1404년) 9월 21일 기록에는 태종이 이렇게 묻는 대목이 나옵니다. “중국의 사신이 오면, 꼭 금강산을 보고 싶어 하는데,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속언에 말하기를, 중국인에게는 ‘고려 나라에 태어나 ..